◇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박은정 옮김/560쪽·1만6000원·문학동네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김은혜 옮김/408쪽·1만6000원·새잎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장의 여성’이라는 새로운 시각… 인터뷰 통해 전쟁의 잔혹함 기록
벨라루스 국경 근처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도시 프리피야트.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유령도시’가 됐다.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인근에 살던 벨라루스 사람들을 인터뷰한 저서를 통해 원전 사고 이후 고통받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아일보DB
“부상병이 자기를 놔두고 가라며 애원했어요. ‘나를 두고 가요, 누이… 그냥 두고 가요… 어차피 나는 죽을 거니까….’ 보니까, 배가 거의 다 파열돼서는… 내장이 다 쏟아져 나왔는데… 부상병이 직접 그것들을 주워 모아 다시 자기 배 안으로 밀어넣었어요….” “봄이라 볼가 강의 얼음이 녹아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뭘 본 줄 알아? 검붉은 얼음덩어리 하나가 떠내려오고, 그 위에 독일 병사 두엇과 러시아 병사 하나가 쓰러져 있는 거야. 어머니 같은 볼가 강도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어….” 그들은 남자들과 똑같이 총 쏘는 법을 훈련받고 전장에 나가 적과 마주한다. 그런데 그들이 증언하는 전쟁은 계급장도, 승전보도 없다. 환호의 느낌표가 아니라 말 잇기의 힘겨움을 나타내는 말줄임표가 계속된다. 이 기록은 참담하고 잔혹하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알렉시예비치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으로 꼽힌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이 작가는 200여 명을 일일이 인터뷰해 ‘다른 전쟁의 역사’를 썼다. 회계원, 실험실 조수, 여행가이드, 교사로 살아가지만, 전쟁터에서 위생사관, 저격수, 기관총 사수, 고사포 지휘관, 공병으로 복무했던 여성들이다.
알렉시예비치논나 스미로바가 전쟁에 나갔을 때 키는 153cm, 발 사이즈는 210mm였다. “공훈을 세울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지만” 그에게 지급된 신발은 260mm였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그에게 지휘관은 연장근무를 명했다가, 쑥 벗겨져 나간 신발을 보곤 방수망토로 210mm 신발을 만들어 주라고 제화공에게 명령한다. 클라브디야 테레호바는 전쟁터에서 머리 감고 말릴 시간이 없어 울면서 머리를 싹둑 잘라야 했던 때를 떠올린다. 낮에는 군화를 신다가도 저녁이면 거울 앞에 서서 숨겨놓았던 구두를 신어보던 때도 털어놓는다. 애틋한 마음을 갖게 하는 여성들의 평범한 모습이지만, 이들의 눈에 비친 전쟁은 추악하다. 갈기갈기 찢긴 병사들이 줄줄이 죽어있는 마을을 지나며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독여야 하고, 절단한 다리를 옆에 놔달라고 소리 지르는 부상병을 위해 무거운 다리를 안아서 옮겨놓는다. 이 목소리들의 기록을 따라 읽다 보면 알렉시예비치가 자신의 작품을 왜 ‘소설-코러스’로 명명하는지 헤아릴 수 있다.
4년 전 국내에 소개된 알렉시예비치의 또 다른 역작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도 함께 조명받고 있다. 1986년 일어났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와 인접해 있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벨라루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언젠가 물어볼 것이다. ‘왜 나는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어요?’ ‘왜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 나는 증명해야만 했다. 딸이 자라서 이 사실을 알도록, 바로 나와 내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또 울음을 참는다).” “1000루블의 보상금을 받았소. 당시 돈으로 오토바이 두 대 값이었소. 지금 그는 1급 장애인이오. 지금 죽어가고 있소. 끔찍한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소.”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체르노빌의 실상을 고발할 뿐 아니라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을 증명한다. 25년 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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