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 ‘거마 대학생’이라는 낯선 단어가 사회를 뒤흔들었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살며 불법 다단계 일을 하던 대학생들의 실태가 알려지면서였다. 취업난에 시달리던 대학생들은 취업과 고수익을 미끼로 삼은 다단계업체의 꼬임에 쉽게 넘어갔다. 이들은 업체의 주선으로 대출까지 받아 빚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런 대학생이 거여동, 마천동 일대에만 5000여 명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그 거마대학생을 다시 떠올리게 한 건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에 실린 단편 ‘서른’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고시원에서 쪽잠을 자며 재수까지 한 끝에 대학에 합격했다. 보습학원 강사와 자잘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었지만, 1000만 원의 학자금 빚만 끌어안은 채 대학을 졸업했다. 나날이 좁아지는 취업문과 보잘 것 없는 이력은 그를 불법 다단계의 늪으로 이끌었다.
소설에서 그린 다단계업체의 합숙생활은 생존, 그 자체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팔아야’했다. 합숙소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견디며 매일 일하는데도 빚은 늘어만 갔다. 얄팍한 인간관계를 팔아 연명하던 주인공은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결국 자신의 어린 제자를 끌어들이고 만다.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주인공은 생각한다. ‘너는 자라서 겨우 내가 되겠지’라고.
소설 속 주인공은 미래를 꿈꾸기 힘든 우리 청춘들의 모습과 닮았다. 거마대학생 사건 이후 4년이 흘렀지만 청춘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인공의 마음 속 읊조림은 끔찍한 상상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미래다. 지금도 서울의 어느 한 귀퉁이에선 차가운 현실에 내몰린 대학생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고수익이라는 신기루를 쫓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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