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 초라하지만…목진석9단 “신예기사 위해 사비 털었다” 기전주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0일 16시 49분


목진석 9단이 주최하는 기전 ‘미래의 별’ 예선전 모습.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목진석 9단이 주최하는 기전 ‘미래의 별’ 예선전 모습.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대회 전체 예산 3000만원에 우승상금 600만원, 준우승 350만원인 기전. 이 정도면 어디서 ‘명함’을 내밀기도 힘들다. 상금 규모가 현재 기전 중 가장 작다. 그런데 이 기전이 한국기원과 프로기사, 바둑팬들의 환영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이름이 ‘미래의 별’인 이 기전의 주최자는 바로 목진석 9단(35)이다. 기사가 기전 주최자로 나선 것은 국내에선 처음이다. 19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난 그는 “실전 대국 수가 절대 부족한 신예 기사들을 위해 아버지(목이균 씨)와 함께 사비를 털었다”고 말했다.

이 대회는 2013년 이후 입단자 34명을 초청해 스위스리그 방식(승패가 같은 기사끼리 대결하는 방식)으로 예선을 치러 본선 진출자 14명을 뽑았다. 이들을 7명 씩 2개조로 나눠 다음달 중순까지 풀리그를 펼친 뒤 각조 1위가 결승 3번기를 치른다.

“신예 기사들의 한해 대국수가 십여 판 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국내 랭킹에 포함되려면 대국 수가 50판 이상이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이라면 3, 4년 걸려야 50판을 채울 수 있어요. 국내 랭킹에 들지 못하면 세계대회나 KB바둑리그 등 주요기전에 참가 자체가 제한됩니다. 또 실전 대국수가 적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 점도 안타까워 기전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기전을 만들 때 그가 세운 원칙의 하나가 대국 수를 늘리는 것이다. 기전 대부분이 토너먼트로 진행되다보니 ‘단칼 멤버’(예선 1회전에 떨어진다는 뜻)가 되면 대국 수를 늘릴 수 없다. 하지만 ‘미래의 별’은 예선에서 최소 4판을 둘 수 있게 스위스리그를 도입했고 본선도 풀리그로 정했다. 본선에 오른 14명은 예선 포함해 무조건 10판을 두는 셈이다.

또 다른 원칙은 제한시간을 길게 잡는 것. 이번 대회에선 예선 1시간, 본선 2시간이다. “요즘 TV바둑이 대세다 보니 국수전 등 일부 기전 외에는 제한 시간 10분 이내인 초속기 기전이 너무 많아요. 속기전이 TV 바둑 팬들을 위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실수가 많아지고 바둑의 깊이가 부족해지는 단점도 있어요. 속기와 장고 바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시간을 길게 잡았어요.”

그는 제한시간이 3시간인 세계대회에서 한국 기사들의 성적이 점점 나빠지는 이유도 긴 바둑에 적응이 안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지금처럼 신예를 방치하면 중국에 뒤쳐질 수밖에 없어요. 물론 지금 좋은 성적을 내는 국내 신예의 실력은 중국과 큰 차이가 없어요. 한데 그 층이 너무 얇은 거죠. 중국은 수십 명인데 우리는 열 명도 안 되니까요.”

기전 비용은 목 9단과 목이균 씨가 반반씩 부담했다. 목 9단은 “액수를 밝힐 순 없지만 기금을 만들어 그 기금의 수익금으로 대회를 운영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 9단이 기전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는 그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다. 그 중에는 자신도 기부를 통해 좋은 취지에 동참하고 싶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는 “생각지 못했는데 좋은 의견”이라며 “올해는 대회 여는 데만 집중했는데 내년엔 기부도 받아 상금도 키우고, 기사와 팬이 함께 하는 이벤트로 마련해 보겠다”고 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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