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손수건을 꼭 갖고 다닌다. 손을 씻은 후 ‘웽∼’ 하며 요란스러운 핸드 드라이어의 바람에 손을 맡기는 게 싫어서다. 종이 타월은 그보다 낫지만 그래도 나의 깨끗하고 부드러운 손수건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손수건의 진짜 용도를 듣게 되었다. 영화 ‘인턴’에서다.
“손수건의 진짜 용도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지.”
요즘 ‘인턴’이란 영화가 화제다. 나는 그 이유를 이 대사에서 찾았다. 손수건이야말로 아날로그 세대의 대표적 휴대품이었다. 지금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는 것처럼 예전에는 항상 손수건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기도 했다. 친구가 실의에 빠져 서럽게 울 때, 그의 슬픔이 너무 커서 자신의 손수건만으론 감당이 안 될 때 내 손수건을 꺼내 그의 눈물과 콧물까지 닦도록 했다. 그러면 친구는 나중에 곱게 다림질까지 해서 돌려주었다. 눈물이 말라 훨씬 해맑아진 표정으로.
손수건이 필요 없다는 것은 일회용 세대이기 때문이다. 휴지 한 장 휙 뽑아서 쓰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손수건 세대가 주목을 받으며 ‘경험은 늙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인턴 신드롬을 낳았다. 물론 이 또한 일시적인 것일 뿐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올봄에 93세로 돌아가신 춤의 고수 조갑녀 선생님의 딸인 정명희 씨를 만났더니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가장 긴 시간 배운 것이 인사법이라는 말을 했다. 어머니는 매번 춤보다 인사부터 익히게 하셨다고 한다. 그까짓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게 무슨 대수라고 ‘인사가 춤의 반’이라고 강조하신 걸까.
그러나 어머니를 여읜 후 첫 무대에서 정명희 씨는 깨달았다고 한다. 무대에 나가 정성스럽게 인사를 하니 자연스럽게 춤도 정성스러워지고 그것을 느끼는 관객들이 뜨거운 박수로 호응해주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게 되더라는 것. 과연 ‘인사가 춤의 시작이고 마무리’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 우리 대화의 초점은 ‘학교 한 번 다녀본 적이 없는 우리 윗세대 어머니들의 삶의 지혜’였다.
그분들은 말씀한다. 타인을 향해 손수건 한 장 크기의 마음이라도 갖고 있는지, 멋진 춤을 뽐내기 전에 나의 춤을 보기 위해 모인 분들에게 정성을 담아 인사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지.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이 어떤 지위에 있든 인생에서는 아직 인턴에 불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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