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가장 후회하는 일을 물었더니 “좀 더 모험을 할걸” “쓸데없이 걱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 등의 답이 많았다는 설문조사가 입길에 오르내린다. 우리는 무엇에 그렇게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라깡, 바디우, 일상의 윤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그것이 ‘고정관념’이라고 말한다. 고정관념은 세계를 지배하는 지식의 체계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말한, 우리가 내면화한 타자(언어적 권력)의 욕망이다. 그것은 그럴싸한 삶의 논리로 포장된다. 김경주 시인 식으로 말한다면 “기껏해야 생은 자기 피를 어슬렁거리는 것”(‘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이 돼 버린다.
저자는 여러 소설과 명화를 통해 자크 라캉과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철학을 소개하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한다.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에서는 도일과 도일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홈스 모두가 타자의 시선에 갇혀 있다고 해석하며 주체의 소멸을 발견한다. 폴 오스터의 ‘유리의 도시’에서는 잘못 걸려온 전화를 기다리는 주인공을 통해 기존 질서가 비틀리는 순간 진리에 매혹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설국열차’에서 뛰어내려 삶과 죽음이 명멸하는 설원으로 나아가는 일, 모피어스가 건넨 빨간 약을 먹고 ‘매트릭스’에서 탈출해 ‘실재의 세계’로 나아가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자신의 최종적인 환상, 나아가 ‘무(無)’와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길은 고독이다. 허무주의자만이 고정관념을 소멸시키고 사건에 접근할 특권을 갖는다.
책 전면 표지에는 발톱이 달리고 털이 숭숭 난 늑대(?)의 앞발 그림이 실렸다. “아버지는 인간 곁에 가기 위해 발이 두 개나 잘려나갔다”(김경주,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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