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승원 씨가 남로당원 아버지를 둔 사내의 이야기를 썼다. 그는 자신의 작품의 오랜 배경이었던 바다 대신 고향 전남 장흥군의 분지를 무대로 삼았다.
주인공은 남로당의 골수분자였던 아버지를 둔 김오현이다. 전쟁통에 가족이 죽임을 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오현에게 조부가 남긴 유훈은 “힘닿는 데까지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현은 시대와의 불화를 피하면서 눈에 띄지 않게, 순하게 살아간다. 열한 명에 이르는 자식들 중에도 그의 관심은 맏아들 일남에게 집중된다. 일남이 법대에 들어가면서 가문을 일으킬 법관의 미래를 확신했지만, 이상하게도 일남은 사법고시에서 번번이 낙방한다. 고시를 접겠다고 통보한 일남이 개척하는 길은 화가로서의 삶이다. 댐 건설로 수몰되는 고향 땅을 떠나 힘겨운 서울살이를 하면서도 오현의 마음엔 아들에 대한 분노가 줄지 않는다.
아직도 이념의 대립에서 놓여나지 못한 사회를 위해 작가가 내놓는 것은 화해다. 작가는 일남이 가문의 비극으로 인한 패배에 젖도록 버려두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감정의 골이 깊던 아버지 오현과 아들 일남이 종국엔 오해를 푸는 것도, 일남이 화가의 길을 놓지 않아서다. 작가 자신 “소설을 통해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면서 “물에 잠기는 삶에 대해 얘기했는데, 화해한다는 것은 물처럼 용해되고 승화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바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탐구의식은 이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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