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불립문자(不立文字)다. 진정한 깊은 진리는 말이나 글로 써서 전할 수 없는 법. 글은 짧을수록 좋다. 군더더기 바닷물을 버리고 또 버려야 생기는 소금결정처럼 글도 그러 하리라. 그래야 그 속에 올곧은 진리가 있다.
여기 열일곱자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가 있다. 이를테면 이렇다. ‘너무 울어/텅 비어 버렸는가/매미 허물은’. 15자가 전부다. 인생의 공(空)을 노래한 시다. 빗방울처럼 짧지만 그 울림은 빗물보다 파장이 크다. 그 속엔 인생이 있고 자연이 있고 깨달음이 있다. 바로 ‘하이쿠’다. 하이쿠는 400년 전 일본에서 시작돼 세계의 수많은 문인들이 사랑하는 시다. ‘하이쿠의 고향’ 일본에서만 담기엔 너무 크기 때문이었을까. 워즈워스, 릴케, 롤랑 바르트, 타고르 등 세계의 많은 문학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누가 처음 하이쿠를 시작했을까. 시작은 알 수 없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이는 분명하다. 마쓰오 바쇼가 인생이 담긴 짧은 시 ‘하이쿠’를 완성시켰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하이쿠’의 완성자 바쇼의 주옥같은 하이쿠를 모은 책이 나왔다. ‘바쇼 하이쿠 선집’(마쓰오 바쇼 지음 l 류시화 옮김 l 열림원 펴냄)이 그것이다. ‘한 줄도 너무 길다’와 베개보다 더 두꺼운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통해 하이쿠를 국내에 소개한 류시화 시인이 다시 엑기스만을 뽑아내 펴냈다.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하이쿠 350편을 류 시인이 해설을 붙였다. 해설 또한 또 하나의 하이쿠다.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 그대 자신이 미리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는 바쇼의 말이 요즘 더 가슴에 다가온다. 그렇다. 자신의 길에서 죽는 것은 사는 것이고, 타인의 길에서 사는 것은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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