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한때 우리 사회에서 ‘멘토(mentor)’라는 말이 반짝일 때가 있었다. 좋은 멘토를 만나면 내 인생도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그 말을 향기 나게 했다. 그런데 상업성과 효율성이 강조된 결과 멘토는 몹시 상투적인 용어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멘토 하면 사교육, 전문 강사, 효율적인 노하우, 성공하고 돈 잘 버는 롤 모델의 의미까지 떠오르는 바람에, 지나치게 달콤하고 미끈한 단어가 되기까지 했다.
멘토는 후진들에게 지혜와 조언을 전달하는 조력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멘토가 필요할 때는 잘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무엇인가가 잘못되고 있을 때,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을 때 멘토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쉽게 말해 제때, 잘 혼내주는 사람이 바로 멘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박재삼의 시, ‘천년의 바람’에는 잘 혼내주는 진짜 멘토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시의 앞부분은 ‘바람’의 영원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천년 전에도 저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었었고, 천년 후에도 저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다. 어디 천년 전에만 그랬을까. 바람은 이천 년 전에도, 삼천 년 전에도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바람이란 순간적이고 하찮아 보이지만, 그것은 매우 유구한 존재이고 따라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것이 지닌 시간의 무게와 유구함 앞에서 오만한 인간은 마땅히 무릎을 꿇어야 한다. 천년을 넘어 사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1연만 보면 자연을 노래하는 잔잔한 목소리 같지만 2연에서 시의 목소리는 사뭇 엄해진다. 시인은 천년 바람의 위엄으로 이상한 것까지 탐을 내는 인간을 꾸짖는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무엇일까. 돈, 명예, 허영, 남의 사람, 남의 목숨, 인간의 몫이 아닌 자연… 너무나 많은 것이 해당될 수 있다. 그러면서 시인은 ‘지치지 말라’고도 말한다. 누대를 걸쳐 살아가면서 사람이 본성을 지키기가 힘들지만,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격려로 들린다. 이상한 사람을 이겨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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