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이 ‘명화를 빛낸 장신구’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 관장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 명화에서 보이는 장신구의 아름다움을 소개합니다.》
그지없이 엄숙하지만 황홀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화면 전체에 피어올라 숨소리를 내는 것마저 조심스럽다. 처음에는 황금빛 세례를 받은 듯 성스러운 몽롱함에 빠졌다가 오래 바라보면 황금의 바다에 익사할 것 같은 당혹감까지 엄습한다.
마르티니는 이탈리아 피렌체 인근의 중세도시 시에나 출신이다. 르네상스 시절 ‘시에나 화파’는 중세 화풍을 유지하면서도 우아함과 섬세함을 잘 표현했다. 시에나 화파를 이끌던 두치오의 수제자인 마르티니는 머리카락같이 가는 금실로 수를 놓은 듯 정교하고 우아하게 ‘수태고지’를 묘사했다. 수태고지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성령에 의해 잉태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한다는 뜻이다.
이 엄청난 메시지를 가지고 방금 하늘에서 내려온 가브리엘은 미처 날개도 접지 못했다. 휘날리는 망토 자락에서 그의 쿵쿵하며 뛰는 맥박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브리엘의 “우아한 마리아여, 그대는 성령을 받은 유일한 여인입니다”라는 따끈따끈하고 성스러운 메시지는 마리아의 마음에 문신처럼 각인되는 듯하다. 동정녀 마리아는 보석 라피스라줄리를 갈아 만든 깊은 푸른색 옷을 입고 권좌에 앉아 있다. 그녀는 책 읽기를 멈추고 옷깃을 여미며 긴장에 휩싸여 천사를 바라본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마리아가 금관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금관은 루비와 사파이어 등으로 장식돼 있다. 그녀의 단아하고 성스러운 이미지를 한결 높여주기 위한 장치 역할을 하는 듯하다. 이 금관은 동시에 ‘어마어마한’ 운명에 순응하는 그녀의 고고하고 견고한 영원불멸의 의지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올리브나무 가지로 된 관을 쓴 가브리엘을 좀 더 자세히 보라. 가브리엘도 보석으로 장식한 작고 깜찍한 금관을 쓰고 있다. 금관이라는 장신구를 매개로 성스러움의 예(禮)를 갖추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마르티니의 작품세계에 흐르는 우아한 감수성과 감미로운 색채, 시적인 감성과 숭고함은 우리의 마음을 오래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르네상스 운동의 미동을 감지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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