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야 포포바, 블라디미르 탐비, 블라디미르 레베데프 등은 1920년대 이후 러시아 구성주의를 기반으로 한 그림책 작가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그래픽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지요. 그들의 그림, 아니 그래픽 요소나 디자인 방식이라고 해도 좋을 작업들은 감성적이지 않고 정서에 호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야기 전달에 최적화한 시각요소들과 단순한 몇 가지 색만으로 어린 독자들의 상상력을 증대시키는 방식이었어요.
프랑스 디자이너 마리로르 크뤼시의 창작 스튜디오인 크뤼시포름이 만들어낸 ‘세상의 모든 속도’는 20세기 초 러시아 그림책의 그래픽 기법을 계승한 듯 보입니다.
세상 모든 움직이는 것에는 저 나름의 속도가 있지요. 이 책은 시간당 움직인 거리로 표현되는 ‘속도’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배치해 놓았습니다. 얼핏 아무 연관이 없는 듯 보이지만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대상을 묶어놓았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방식으로도 공통점을 갖는 듯 보여 자기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하게 됩니다.
뒷면에는 앞에서 나온 요소들 각각의 설명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첨부돼 있습니다. 선과 면이 중심이 된 그림들은 사실적이고 구상적인 그림에 비해 독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반면 고전적인 느낌의 석판화 기법을 이용한 채색 방식은 거친 듯해도 수작업의 따스함이 엿보여 친근하게 다가오지요. 물론 21세기를 사는 이 작가는 컴퓨터로 그것을 표현했을 수도 있어요.
최소화한 글, 선명한 색채와 깔끔한 배치로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는 것, 정보 전달 효과로는 최고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물의 생태, 탈것의 역사, 인류 역사의 기점이 된 발명품들, 인간의 속도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에 대한 의문과 시선의 확장 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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