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책이 사라진 듯 사람들이 책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21일로 시행 1년이 되는 도서정가제가 책 시장과 독서문화에 미친 영향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다. 무분별한 가격 할인 경쟁으로 치달아온 책 시장을 정상화하고, 독서문화를 성숙시키기 위해 도입된 도서정가제의 길이 아직 멀어 보인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분석 자료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서적 구입비는 올해 상반기 1만7727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9696원)보다 10%나 줄었다. 이 수치는 2003년 통계가 시작된 이래 12년 만에 최저치다. 다른 원인들이 있지만,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가격 할인을 못 받자 책 구입이 준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중국 진시황이 학문으로 정치를 비판하는 일체의 행동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 나라의 책을 모두 불태웠다는 분서갱유. 이 시절에 책은 소수 지식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1455년 활판인쇄술을 개발해 성경을 인쇄하면서 비로소 대중들도 책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올해 초 국내 번역된 책 ‘책과 혁명’(로버트 단턴 지음·알마출판사)에 따르면, 1789년 프랑스 혁명은 당시 출판인쇄술의 발달과 책의 보급에 따라 생성된 자유로운 정신이 봉건적 인식체계를 흔든 결과다. 이처럼 책은 뭔가 새로운 지식과 흐름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매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발돋움을 하기 위해 한 단계 도약해야 할 한국 사회는 지금 어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월평균 독서량은 1.3권으로 34개 회원국 중 꼴찌다. 최상위인 미국이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이며 중국도 2.6권을 읽는다. 성인의 35%는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이제 과거처럼 책은 소수의 전유물이 된 것 같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가 뭘까.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수단을 보면 얼핏 답이 나온다. 몇 년 전까지 신문이나 책을 읽던 사람들의 손에는 이제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뉴스,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모든 게 해결된다. 스마트폰은 마치 모든 사람의 시선을 붙들어 그 안에 가둬버리려고 탄생한 블랙홀 같다. KT경제경영연구소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3시간 39분이나 된다.
또 하나 주목을 끄는 것은 노동시간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노동시간은 연 2124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2228시간)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느라고, 청년들은 스펙을 쌓느라고, 어른들은 일하느라고 책을 읽지 못한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우리가 선진국보다 효율이 높다고 볼 수 없다. 이제 ‘무작정’ 공부하고 일하는 시대는 지났다. 창의력의 시대에는 책에서 얻어 안에서 곰삭은 지식과 혜안이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 부유하는 파편화된 지식이 쓸모없다는 것을 이제 다 알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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