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사실주의 화풍을 꽃피웠던 플랑드르(현재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 북부) 지역은 이탈리아와 함께 15∼16세기에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의 쌍두마차를 이끌었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기틀을 마련한 얀 호사르트는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접한 로마의 고전 건축과 조각을 회화에 접목시켰다. 남북 르네상스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이다. 지금의 프랑스 북부 모뵈주에서 태어난 그는 누드화는 물론이고 모델의 내면까지 생생하게 표현한 초상화의 대가이기도 하다.
바다의 신 넵투누스(포세이돈)와 그의 아내 암피트리테의 이 더블 누드화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우리의 시선을 장악하고 가슴을 술렁이게 할 만큼 외설적이기까지 하다. 당시 신화를 그리는 것은 화가의 표현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방편이었다. 따라서 신을 표현하는 한 누드를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다.
작가적 끼와 영리함을 두루 갖춘 호사르트는 이런 점을 맘껏 활용해서 이 작품을 제작했을 것이다. 오른손에 자신의 상징물인 삼지창을 들고 있는 넵투누스와 수줍음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바다의 여신 암피트리테는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신랑 신부처럼 왼손을 살포시 잡고 있다. 이들 사이에 흐르는 진한 애정의 강물은 양손을 넘어 넵투누스가 착용한 ‘고동 장신구’로 모이는 듯하다. 이들의 사랑을 맘껏 찬양하기 위해 호사르트는 남자의 ‘성기 가리개’로 장식한 바다의 신을 탄생시켰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원초적인 천연 장신구라 할 수 있겠다. 수많은 장신구를 접하고 수집했지만 넵투누스가 착용한 장신구만큼 재료 사용이나 용도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유쾌하게 파괴하는 장신구는 보지 못했다.
암피트리테는 바다의 요정인 50명의 네레이드(님프) 중 한 명이었다. 춤을 추는 그녀를 우연히 보게 된 넵투누스는 한눈에 반해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상징인 돌고래를 보내 그녀를 설득해 결혼하게 된다. 그들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 장남 트리톤을 비롯해 자식을 셋 두었다. 바다의 신을 묘사하기 위해 호사르트는 고동을 사용했지만 600년이 지난 지금도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 중에는 성기 가리개 장신구를 사용해 남성미와 용맹을 과시하고 있다. 호사르트는 이 그림을 그리고 4년 뒤에는 ‘아담과 이브’의 누드화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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