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투잡’이다. 하나는 자기 생업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평론가다.”
영화평론가들 사이에 이런 농담이 있었다. 1년에 네 편의 영화를 볼 만큼 영화광이 많은 데다 너나없이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그럴듯한 영화평을 올리니 영화평론가들이 으스대기도 어렵고 밥 벌어먹기도 힘들어졌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은 또 다른 의미로 투잡이다. 하나는 생업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 산악인이다. 뒷산을 산책할 때도 히말라야에 오를 때나 입을 법한 전문 아웃도어 룩을 갖춰 입는다. 아파트 화단에서 궁상맞은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들도 아웃도어 룩이다. 이런 아웃도어 열풍의 배경에는 등산 붐이 있고, 등산 붐의 배경에는 박영석 엄홍길 같은 위대한 탐험가와 산악인들이 있었다.
나는 박영석 대장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되기 수년 전 우연히 함께한 식사 자리를 잊지 못한다. 밥을 먹다 그가 돌연 혈당측정기를 꺼내더니 엄지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살펴보는 게 아닌가. 지독한 당뇨병을 앓았던 그는 “산에만 가면 이상하게 당뇨증세가 말끔히 사라진다”고 했다. “목숨 걸고 산에 도전하는 까닭이 뭐냐”는 나의 우문에 그는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해져서”라는 현답도 했다.
대가들은 위대한 도전을 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놀라울 만큼 막연하게 답하는 때가 많다.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나”란 질문을 받은 전설적 산악인 조지 맬러리가 “거기에 산이 있어서”라고 답한 것은 있어 보이려고 그리 말한 게 아니라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 얼마 전 ‘하늘을 걷는 남자’란 영화를 보면서 나는 박영석 대장을 떠올렸다. 미국 뉴욕 쌍둥이 세계무역센터 빌딩 사이에 밧줄을 매달고 412m 높이에서 외줄타기에 성공한 프랑스 모험가 필리프 프티의 실화를 옮긴 이 영화에서 주인공 프티는 “왜 목숨을 걸고 줄 위를 걷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뭔가 대단히 아름다운 곳에 줄을 매달고 거기를 건너는 일이 나의 꿈이니까요.”
3. 막연하고 언뜻 실체 없어 보이는 꿈이야말로 진짜배기 꿈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 시절부터 ‘구체적인 꿈을 꾸고 실행 계획을 정밀하게 세워야만 성공한다’는 도식에 갇힌 채 꿈의 노예로 전락한다.
만약 이런 뜬금없는 꿈을 프티가 자기소개서에 담아 대학 수시모집을 통해 ‘곡예학과’에 응시했다면? 떨어질 확률은 500%다. 프티가 국내 대학에 들어가려면 외줄타기가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증명해야 하고, 외줄타기 곡예사가 되기 위해 좋은 인성평가도 받아야 할 것이며, 줄타기에 도움 되는 물리학 운동학 서적과 더불어 위대한 도전자들의 삶을 실은 위인전들을 주도면밀하게 읽으면서 꿈을 수년간 구체화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할 ‘독서이력’을 지녀야 하고, 교내 외줄타기 동아리 활동을 통해 창의적 체험활동도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동네 노인정에서 외줄타기 퍼포먼스를 통해 지역사회에 가치를 제공하는 봉사활동 150시간을 확보해야 할지도 모르고, 대입 면접장에선 “균형의 미학인 외줄타기를 통해 인생에서도 지덕체의 삼위일체 균형이 가장 중요함을 체득했을 뿐 아니라, 미중 G2 간 힘의 균형과 긴장이 가장 안정적인 형태의 세계평화를 담보한다는 깨달음으로까지 사고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라는 얼토당토않은 ‘뻐꾸기’를 날려야 할 순간이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꿈. 꼭 구체적이어야 할까. 체계적이고 단계적이고 확산적이어야 할까. 요즘엔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초등학생도 “대통령”이라고 답하는 일이 드물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지부 사무총장이요” 정도는 말할 줄 알아야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거요” “세상에서 가장 큰 걸 만드는 거요” “어떤 죄도 짓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거요” “할머니 음식점 물려받아 최고의 김치찜 만드는 거요”라고 말했다간 바보 취급받기 딱 좋은 세상이다.
막연한 꿈의 아름다움과 저돌성을 우린 몰라가고 있다. 개나 소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살다 보니 외려 박탈감만 태산만 해진다. ‘기억 속으로’를 부른 가수 이은미는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가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꼭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것이 될 수 없어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바보청년 검프의 꿈은 ‘계속 달리는 것’이라는 단순, 명료, 황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해냈고 세계평화의 초석을 다졌다. ‘하늘을 걷는 남자’의 주인공 프티처럼, ‘배트맨’의 주인공 브루스 웨인처럼 진짜 위대한 꿈은 나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다는 작고 사적이며 절박한 과제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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