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랑스 문단의 화두는 ‘유럽과 이슬람’이었다. 수니파 과격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배후설이 나오는 가운데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 등 잇달아 터진 IS의 위협 때문이다. 또 유럽으로 밀려오는 중동 출신 난민들의 물결은 문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22년 프랑스가 이슬람 정부를 선출한다는 논쟁적 예언을 담은 미셸 우엘베크의 ‘복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3일 프랑스 문단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은 동서양의 문화적 교류에 관한 탐구소설을 쓴 마티아스 에나르(43)의 ‘부솔(Boussole·나침반·사진)’이 수상했다. 작가의 아홉 번째 소설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음악 연구가인 프란츠 리터.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가 밤에 잠에서 깨어 응답 없는 프랑스 여인에 대한 사랑을 포함해 유럽과 중동 간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생각을 탐험하는 지적인 소설이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처럼 오스트리아에서 중세의 이슬람 계몽시대, 시리아의 IS에 의한 처형까지 시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다.
1972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에나르는 파리 동양어전문대(INALCO)에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전공했다. 이후 이란과 레바논 등지에서 살다가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거주하고 있다. 에나르는 시리아 터키 등지로 수없이 다닌 중동지역 여행을 문학의 소재로 삼아 왔다. 2003년 데뷔작 ‘완벽한 조준’에서 리비아 내전의 저격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2008년작 ‘지대(Zone)’는 주인공이 500쪽에 이르는 한 문장의 독백으로 유럽의 잔인함에 대해 말하는 소설로 수많은 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수상 소식을 들은 뒤 ‘라 바카라!’(축복)라고 외쳤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 상은 2010년 사망한 알제리의 존경받는 역사가 셰이크 아브데라만과 레바논의 수호성인 성 조지의 축복 때문”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공쿠르상은 해마다 파리 오페라가(街)에 있는 유서 깊은 드루앙 레스토랑에서 10명의 심사위원이 양고기 스튜로 점심을 먹은 뒤 최종 후보작 4편에 대해 투표로 결정한다. 지난달 튀니지의 수도에 있는 국립 바르도 박물관에서 발표된 후보작 4편은 모두 유럽과 이슬람의 관계에 대한 작품이었다. 바르도 박물관은 3월에 이슬람 지하디스트의 테러 공격으로 22명이 희생된 곳이다.
최종 후보작에 올랐던 프랑스 출신 튀니지 소설가 에디 카두르의 ‘원칙들’은 1920년대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제국주의를 다룬 소설이고, 토비 나단의 ‘당신과 닮은 이 나라’는 유대인으로 이집트 카이로에 살았던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며 이방인에 대한 관용을 잃어버린 현실을 꼬집는다. 또 나탈리 아줄레의 ‘티튜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도 로마시대 팔레스타인 여왕의 캐릭터를 통해 현대 중동의 정세를 은유한 소설이다.
알제리 작가 부알렘 상살의 ‘2084’는 조지 오웰의 ‘1984’를 빗대 이슬람 칼리프 국가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다뤘다. 상살은 2010년 공쿠르상 수상자인 ‘복종’의 작가 우엘베크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았지만 최종 4인 후보에 들지는 못했다.
공쿠르상은 1903년 첫 회 수상부터 지금까지 상금은 10유로(약 1만2000원)에 불과하지만 수상작은 하루 사이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영광을 얻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꽃 파는 아가씨들의 그늘 아래’,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시몬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 대표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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