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깊고 너무 아픈 사연을 모아 부처님께 빌었어라 한번 치면 서라벌이 평안했고 두 번 치면 천리까지 평안했고 세 번 타종하면 삼천리까지라 거기까지가 신라(新羅) 땅 되었어라 금수강산으로 수(繡) 놓였어라 어지신 임금님의 옥음(玉音)이 되었어라 만백성들 어버이로 섬기었어라 끝없이 태어날 아기들을 위하여 끝없이 낳아 키울 어미들을 위하여 한 어미가 제 아기를 공양 바쳐 빌었어라 껴안고 부둥켜안고 몸부림쳐 빌었어라
에밀레∼ 에밀레레∼ 종(鐘)소리 울렸어라.
들으시라, 나라님이시여, 백성들이시여. 저 신라 왕국이 세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뻗쳐오르던 국력으로 낳은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이 일천삼백 살 나이로 에밀레! 에밀레! 울어대는 소리를.
성덕왕이 승하하자 아들 경덕왕(景德王)이 아비의 극락왕생을 빌고자 원음(圓音)의 대종을 주성코자 하였으나 못 이루어 그 아들 혜공왕(惠恭王)이 등극 7년 되던 771년에 천하무필(天下無匹)의 신종(神鐘)의 현신을 맞게 되었다.
구리 12만 근을 들여 3.6m 높이로 지은 장대한 이 종은 전해오는 국내 범종 가운데 규모나 양식, 조형에 있어 가장 뛰어난 신품으로 추앙받고 있다. 용뉴(龍(뉴,유))며 공양상이며 비천상(飛天像)이며 보상화(寶相花) 등이 신라시대 금속공예의 대미(大尾)를 보게 한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을 한림랑(翰林郎) 김필중(金弼衆)이 쓴 종명에 이르되 “크고 큰 소리는 하늘과 땅 사이 만물을 흔들어 울리지만 귀 밝은 자 듣고자 하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성덕대왕의 덕은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었으며 해와 달처럼 이름이 빛났다. 충성스럽고 어진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였으며 예(禮)와 악(樂)을 숭상하고 미풍양속을 권장하였다. 농부는 들에서 천하대본의 농사에 힘썼으며 저자에서는 사치한 물건이 없었다. 백성은 금옥(金玉)을 멀리하고 세상은 문학과 재주를 떠받들었다” 하였다. 한편 가난한 어버이가 어린아이를 시주하여 쇳물 속에 던졌다는 아픈 전설을 두고 시인은 “끝없이 태어날 아기들을 위하여/끝없이 낳아 키울 어미들을 위하여/한 어미가 제 아기를 공양 바쳐 빌었어라/껴안고 부둥켜안고 몸부림쳐 빌었어라”고 어미 된 마음으로 울고 있다.
이 에밀레종에 새겨진 글귀를, 그리고 그 종소리를 다 알아들을 귀를 가진 이는 지금 어디 계신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