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청 기와담장 넘은 그믐달빛에 담천(曇天) 같은 시래기 시래깃국 그믐달빛에 싸잡아서 한 냥 서 푼어치에 마음을 들켜 파들짝 불잉걸 데듯 하는 사연을 아시나요 아흐레 낮녘 지당(池塘)에 낀 떼수련(睡蓮)서껀 거문고처럼 기댄 조릿대서껀 청매(靑梅) 송아리서껀 그냥 국으로 고개를 튼 생강꽃서껀 울컥울컥 봄꽃 찌클어진 그 자리 쟁강쟁강 꽃그늘 속손톱만큼씩 한 그늘만 닿아도 한사코 비장(脾臟) 속까지 데듯 하는 사연을 아시나요 여울 기슭 비오리새끼처럼 모가질 감고 부벼도 삽짝 건넌 눈맞춤 같은 슬픔뿐인데요 입 안 가득 은비녀 무는 슬픔뿐인데요 물 같은 가슴가슴 물이랑 일듯 소름이 돋쳐 하냥 사늘히 엎지르기나 할 따름인데요 반물모시 쓰개치마 겹으로 동이고 여민 열 예닐곱 사연일란 백마금편(白馬金鞭)은 고사하고 물색없는 불목하니처럼 훔쳐가세요 아예 보리누름께 명화적패처럼 앗아가세요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오는 때는 언제고 오는 길은 어디인가. 사랑의 역사 또한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그 끝은 보이지 않는 것. 그 규율이 엄혹했던 조선 후기에 도화서(圖(화,획)署)의 화원이었던 혜원(蕙園) 신윤복(1758∼?)은 우리네 그 시대의 삶의 실상을 살아 움직이게 그리면서 ‘사랑의 풍속’에도 특별하게 붓을 들었었다.
여기 ‘혜원풍속도’(국보 135호)의 그림 한 장을 훔쳐보자. 어스름 눈썹달만 구름 속에서 곁눈질하는 한밤중 어느 대갓집 도련님 읽던 책 덮어두고 호롱불 밝히며 쓰개치마 둘러쓴 시악시를 불러내고 있다. 화제((화,획)題)에 “달빛 침침한 야삼경 두 사람 속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하고 짐짓 뒷맛을 풍긴다.
만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람이며 사랑을 그리지 못한다면 예술을 어디서 찾으랴는 생각에 남녀 간의 애정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난 혜원, 시인은 이 ‘월하정인도’에서 못다 그린 것까지 시로 옮긴다.
“여울 기슭 비오리새끼처럼 모가질 감고 부벼도/삽짝 건넌 눈맞춤 같은 슬픔뿐인데요/입 안 가득 은비녀 무는 슬픔뿐인데요”라고 사랑 끝에 오는 그 눈물까지 적시누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