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 만에 치러지는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등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선정(30일, 다음 달 3일, 7일)을 앞두고 일어난 잡음과 최근 금속활자인 증도가자의 진위 논란에서 보듯 현재 유·무형문화재의 지정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무형 문화재 지정의 목적과 시대 변화상에 맞게 기준과 절차 등을 전면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에게 그 해법을 들어봤다. 》
○ “전승자 많은 분야는 인간문화재 수 늘리자”
무형문화재의 경우 전문가들은 전통 춤 인간문화재 선정을 둘러싸고 내부에서 과열 경쟁 양상이 벌어지는 건 해당 춤을 배우는 사람이 많은데도 인간문화재가 1, 2명에 불과해 권한과 부가 집중되는 근본적인 문제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1960년대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겨난 것은 당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전통 문화의 맥이 사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전통 무용의 경우 각 대학 무용과에서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등을 필수처럼 배우고 있어 전승에 문제가 없는 만큼 인간문화재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무용가 조흥동 씨는 “전승이 잘되고 있는 분야의 경우 인간문화재를 없애거나 지금처럼 소수의 독과점 구조 대신 많은 사람을 선정해야 지금과 같은 과열 양상을 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인간문화재 심사 방식과 심사위원 구성에 있어 공신력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임장혁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는 “이번에 심사위원을 급히 꾸리다 보니 후보자가 제자 격인 무형문화재 이수자에게 심사를 받게 됐다”며 “심사위원 자격을 명확히 해야 선정 과정 전체에 공신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 문화재청이 심사 과정에서 각 분야마다 후보자들이 한 번만 실기 심사를 치르도록 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임 교수는 “후보자들이 이미 십여 년간 활동을 해온 사람들인데 이번처럼 단 한번의 실기 심사를 받도록 한 건 불합리하다”며 “일본의 경우 조사단들이 미리 전수 예상자들의 공연 및 활동을 비공개로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자료를 축적하고 수시로 여론을 수렴해 인간문화재를 선정해 잡음이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 다른 분야 전문가 참여 늘려야
유형문화재에 관해선 제조 시기와 발견지 등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검증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전문가 풀을 넓혀 오류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6년 가짜로 드러난 ‘귀함별황자총통’은 문화재위원과 전문위원 2명의 의견만으로 바다에서 인양된 지 불과 사흘 만에 국보로 지정됐다. 문화재 검증 과정을 소수의 문화재 위원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여러 전문가가 참여하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
문화재위원장을 지낸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문화재위 의사결정 과정에서 전문위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필요에 따라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해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러 전문가가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려도 여러 단계에 걸쳐 검증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재위원 전원이 국가문화재 지정에 동의했더라도 100% 진품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한 명이라도 반대 의견이 나오면 지정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난품이나 위조품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도록 검증 단계에서 출처를 명확히 파악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지 전 관장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모든 문화재의 출처와 반입 경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 검증에서 첨단 과학기법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과 X선 형광분석 등을 이용해 증도가자의 위조 증거를 발견한 바 있다. 안 이사장은 “개별 문화재에 대한 인문학적 안목과 더불어 충분한 과학적 검증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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