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좋아하면 어린이, 눈을 싫어하면 어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시는 예외다. 박용래의 ‘저녁눈’을 읽으면 어른들도 눈이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눈이 오지 않을 때 읽으면 마음에 눈이 오는 듯하고, 눈이 올 때 읽으면 내리는 눈을 음미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단순하고 밋밋해 보인다. 길이도 참 짧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붐비다’라는 구절이 약간씩 변용되면서 총 네 번 반복된다. 반복되고는 끝이다. 그런데 이 반복과 약간의 변화가 범상치 않다.
반복되는 구절은 힘이 매우 세서 읽는 이를 번쩍 들어서는 ‘늦은 저녁의 눈발’ 아래 세워 놓는다. 처음에는 ‘와, 눈이 오는구나’ 생각하다가 이내 눈, 눈, 눈들을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 눈은 어느 곳에나 공평하게 내리는데 유독 잘 보이는 부분이 있다. 먼저, 호롱불 밑에는 빛을 받은 덕에 눈발들이 더욱 잘 보인다. 그 옆에 매여 있는 조랑말로 시선을 옮겼는데 발굽보다 눈발이 먼저 보인다. 여물 써는 소리는 저녁, 호롱불, 마구간의 정취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걸음을 더 옮겼더니 변두리의 공터가 나왔다. 여기야말로 눈발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이다. 빈터를 가득 채우듯이 눈발은 바람과 함께 이쪽저쪽 휘저어가면서 빠르게 떨어진다. 천천히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라면 “붐비다”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기가 많아 빨리 떨어지는 눈, 바람을 타고 몰아치는 눈이어야 ‘바쁜 눈’이 될 수 있다. 그 눈을 맞으면 어깨는 더 빨리 젖을 것이다. 스미는 물기를 느끼며 시인은 오래도록 눈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는 더할 곳도 없고 뺄 곳도 없는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1969년에 발표되었을 당시에 탁월함을 인정받아 제1회 현대시학상을 받기도 했다. 소설가 이문구가 선배 박용래 시인을 회상하는 글에서 가장 먼저 외웠던 작품도 바로 이 작품이다. 필요 없는 것을 탈탈 털어냈는데 남은 것이 이토록 아름답다. 많은 것, 복잡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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