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시의 눈]일요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7일 03시 00분


일요일 ―서대경(1976∼)

눈이 내리고 있었다
목욕탕 앞이었다
이발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영 슈퍼 간판 아래
한 여인이 비누갑을 손에 든 채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나는 이발소 거울 앞에 앉아
그녀의 젖은 머리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면도칼이 나의 뒷덜미를 슥슥슥슥 긁을 때
하얀 와이셔츠 자락이 내 뒤에서
유령처럼 춤추고 있었다

전국 노래자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후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허공으로
상어 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도시 변두리거나 소읍의 길거리다. 한 사람이 이발 중이고 거울에 거리 풍경이 비친다. 목욕탕과 슈퍼를 배경으로 웬 여인이 서 있다. 막 목욕을 마친 등 뒤의 그녀는 불현듯 그의 눈앞에 와 웃고 있다. 누구일까. 면도가 목덜미에 어른거리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셔츠 자락이 펄럭이고 있다. 눈앞의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티브이 소리가 귀를 찌르고 미사를 알리는 바깥의 소리가 난다. 시간이 날카롭게 멈춘 듯하다.

이것은 무서운 풍경이다. 나는 저 여인이 자꾸 귀신으로 보인다. 아마 저곳에서 무슨 사고가 났을 것이다. 그녀는 목숨을 잃었으나, 어디로도 가지 않고 젖은 머리를 하고, 웃고 섰던 모습 그대로 그곳에 멈춰 있는 듯하다. 뜻밖의 것이 등 뒤에 있다. 그리고 거울은 그것을 포착해 보여주는 장치다.

시는 감각을 깨어나게도 하고,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감정을 요동하게도 한다. 시의 각성과 위안과 감동이 성공적이 되려면 어떤 낯섦에 실려 있어야 한다. 이 시는 이중으로 낯설다. 우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면도칼과 상어 떼의 섬뜩한 이미지에서 느껴지듯 그것을 낯선 방식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일요일은 심심하지도 나른하지도 않다. 우리는 문득, 보자기를 쓴 채 이발소 의자에 얼어붙는다.

이영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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