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6일자 주말판 소비자 섹션에서 ‘주도권을 잡은 한국’(Korean Driven)이란 기사를 통해 한국 미술가들이 세계 화랑가를 점령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198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초청된 한국이 1995년 한국관을 지으면서 이불(1999년), 양혜규(2009년), 이용백(2011년) 같은 작가로 일부의 관심을 모으다 올해 비로소 세계미술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대표작가로 멀티미디어 작품을 선보인 문경원 전준호 듀오와 한국작가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작가가 그 축포를 쏘아올렸다고 소개했다. 비엔날레 외부전시인 ‘재상상된 경계’전에 초청된 김준 작가와 한지조각가 전광영 작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디지털 프린트 작업을 해온 김준의 마네킹을 이용한 설치작품 ‘채색 두폭제단화’는 올해 5월 런던에서 2만1875파운드(약 3800만원)에 팔렸고, 전광영의 설치미술 연작인 ‘어그레게이션(집합)04-NO054’은 4만3754파운드(7700만원)에 팔렸다.
FT는 이에 머물지 않고 한국미술의 개척자로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부터 설치미술가 이불을 거쳐 올해 불붙은 한국 단색화 열풍까지를 훑으면서 미국과 영국 홍콩 등 세계화랑가에서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가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치솟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한국 단색화 열풍의 선두에 선 이우환 화백의 작품은 한 경매에서 220만 달러(약 25억7000만원)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박서보, 전창섭, 정상화, 하종현, 권영우 등 다른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도 런던과 뉴욕, 홍콩에서 작년보다 두 배나 뛴 40만 파운드(약 7억원) 안팎의 가격에 거래됐다. 이들과 동세대인 김환기의 작품가격도 덩달아 올라 5월 홍콩경매에서 ‘19-VII-71 #209’라는 점묘화가 47억2100만원에 낙찰되는 기염을 토했다.
미술 컨설턴트 아리안 르벤 파이퍼는 한국미술에 대한 세계화랑가의 평가의 전환점을 2012년으로 꼽았다. 영국 사치 갤러리에서 한국 현대미술작품을 모아 전시한 제3회 ‘한국의 시선’전이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한국의 시선’전을 후원해온 사람은 한국미술 최고의 수집가로 불리는 데이비드 시클리티라 영국 패러럴미디어그룹 회장이다. 시클리티라 회장은 “한국이 마침내 세계 미술계에 의해 아시아를 선도하는 창조적 발전소로 인정받게 됐다”며 “한국 화가들은 서구문화와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도 자신들의 언어로 한국적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매우 세련되면서도 매우 영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는 폐타이어를 이용해 역동적 동물상을 만드는 지용호와 역사적 사진들을 극사실적 회화작품으로 옮겨놓는 강형구 같은 젊은 예술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FT는 이런 세계화랑계의 한국열풍을 일시적 유행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경계했다. 영국 버밍햄 이콘 갤러리의 조나선 왓킨스 학예실장은 “일본과 중국에 이어 이번엔 한국 차례라고 생각한다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며 “일본 미술을 이국적으로 평가하듯이 한국 미술을 이국적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에서 벗어나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미술을 세계미술의 변방이 주는 특이함으로 바라보지 말고 당당한 주류의 후보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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