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일본에서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신칸센 열차에서 분신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이는 평소 연금 수급액이 적다고 불평하던 71세 노인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35년 동안 연금을 부었고 그 대가로 노후에 월 12만 엔(약 113만 원)을 받았다. 이는 그가 거주하던 도쿄(東京) 스기나미(杉竝) 구의 생활보호대상 기준보다 2만 엔(약 19만 원) 이상 적은 금액이었다.
‘하류노인-1억 총 노후 붕괴의 충격’의 저자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 씨는 인터넷에 올린 자신의 칼럼에서 이 사건을 두고 “범죄는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평생 낮은 임금을 받으며 열심히 일해 연금을 붓고 일본 경제성장에 기여한 인물이 이렇게 비참한 말로를 맞이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제목 중 1억 총이란 일본 인구의 대부분을 의미한다.
후지타 씨는 도쿄 인근 사이타마(埼玉) 현에서 빈곤지원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NPO) ‘호토 플러스’의 대표다. 그는 ‘생활보호대상 기준 정도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고령자 또는 그럴 위험이 있는 고령자’를 ‘하류노인’으로 정의하고 그 수를 600만∼700만 명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책에서 자신이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다음은 한 사례다.
가토(加藤·76) 씨는 고교를 졸업한 뒤 자위대를 거쳐 요리사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40대에 부모의 건강이 악화됐고 10년 동안 간호하느라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닐 수 없었다. 양친이 모두 돌아가시고 50대 중반이 된 그는 간호 일을 하다 정년을 맞았다. 은퇴 후 그에게 주어진 연금은 9만 엔(약 85만 원). 월세가 5만 엔이다 보니 생활비는 늘 부족했고 모았던 돈 500만 엔(약 4700만 원)은 금세 사라졌다. 상담을 의뢰했을 때 그는 길가에서 산달래를 캐 먹거나 노숙인 배급소에서 밥을 먹으며 연명하는 처지였고 키가 180cm인데 몸무게는 50kg에 불과했다.
저자를 찾아온 이들은 하나같이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연 수입이 직장인 평균인 400만 엔(약 3800만 원)인 이들도 하류노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게 후지타 씨의 지적이다.
중산층이 하류로 전락하는 과정에는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먼저 병이 들거나 사고를 당해 고액의 치료비를 지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녀가 연 수입 200만 엔(약 1900만 원) 이하의 ‘워킹 푸어’이거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여서 부모에게 의지할 경우 하류 전락 가능성은 더 커진다. 황혼이혼을 하거나 당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전하는 경제대국 일본의 그늘은 심각한 수준이다. 혼자 사는 여성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같은 연령대 소득 중간값의 50% 이하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고령자 중 저축액이 200만 엔 이하인 이들이 30% 이상에 이르며 절반 이상이 ‘사는 게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문제는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도 활용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생활보호 신청을 부끄러워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일본 사회에 무언의 반발과 은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한다. 제도를 만드는 정부도 실제로는 해당자들이 모두 활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6월에 출간된 후 화제를 모으며 일본에서 10만 부 이상 팔렸다. 빈곤층 노인 문제를 고민하는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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