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의 ‘밥상지교 특별전’에 전시된 라면과 양은 냄비 모형. 냄비 뚜껑을 열면 라면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동영상 화면이 나온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 빛바랜 모서리의 나무 탁자 위에 돈가스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다. ‘한국식 돈가스’의 필수 아이템 단무지와 김치도 함께. 벽에 달린 빨간색 원단 커튼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1980년대 부친과 단둘이 찾았던 경양식집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당시 남녀가 선을 보거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별러서 간 경양식집은 양송이 수프와 식빵, 돈가스로 이어지는 나름의 코스 요리를 갖추고 있었다. 이 전시장에서 반가운 추억에 빠져들 수 있는 건 음식모형을 제외한 탁자와 가구 일체가 1980년대 서울 정동의 명소였던 경양식집 ‘이따리아노’에서 실제 사용된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2. ‘치익∼’ 고기 굽는 익숙한 소리가 스피커에서 연신 흘러나온다. 양념을 묻힌 고기를 석쇠에 굽는 장면은 한국식 불고기를 빼닮았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야키니쿠(燒肉)’다. 우리나라 불고기를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춰 변용한 요리다. 함께 전시된 일본식 양념들과 무연로스터(연기 없이 고기를 굽는 장치) 등은 일본화된 한국 불고기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오늘 개막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밥상지교(飯床之交)’ 특별전을 8일 미리 다녀왔다.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는 데 음식만한 소재는 드물 것이다. 밥상에는 국경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올해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우경화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일본 규슈국립박물관과 함께 개최할 예정이던 ‘한일 백제 특별전’을 취소한 상황에서 민속박물관의 특별전은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앞서 민속박물관은 공동 주최자인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과 2년 동안 특별전을 준비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에서 돈가스를 비롯해 라면, 카레, 오뎅, 스시 등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음식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일본 음식들을 소개한다. 반대로 일본인들의 식생활에 변화를 일으킨 김치와 삼겹살, 불고기, 순두부 등 한국 음식의 영향도 다뤘다.
특히 양국 음식문화의 교류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 고유의 맛을 잃어가는 과정을 다뤄 눈길을 끈다. 이른바 미원으로 상징되는 조미료와 왜간장이 대표적이다. 미원의 원류로 1910년 조선 땅에 처음 들어온 일본 아지노모토(味の素)는 일제강점기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맛의 균일화를 가져왔다. 이와 함께 ‘코끼리 밥솥’으로 대표되는 일본 전기밥솥이 가마솥을 대체하면서 누룽지가 사라진 아쉬운 장면도 다뤘다. 내년 2월 29일까지. 무료. 02-3704-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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