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제시대 열렸다”…中, 삼성화재배 우승 커제 열광 한국반상, 2005년 이창호 우승 이을 새얼굴 나와야
‘중·중대결’로 펼쳐졌던 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의 우승은 중국랭킹 1위 커제(18) 9단에게 돌아갔다. 커제는 8∼9일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에서 벌어진 결승3번기에서 스웨(중국랭킹 2위)를 2-0으로 완파하고 우승컵과 상금 3억원을 거머쥐었다.
중국바둑계는 당연히 자국기사의 우승에 환호작약하고 있다. 삼성화재배에서 중국기사끼리 결승전을 치른 것은 2009년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안방에서 자국기사들의 세계대회 결승대결을 지켜보는 일은 바둑강국 팬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그것도 다른 나라가 주최하는 기전이라면 재미가 두 배로 ‘꼬소’해진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바둑팬들의 전유물이던 이 재미가 요즘은 중국 팬들에게 더 익숙해졌다.
커제의 우승은 중국 팬들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커제는 중국 프로기사 랭킹 1위다. 커제가 20년이나 된 전통의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중국1위=세계1위’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또 하나는 중국바둑계의 숙원이던 ‘세계대회를 두 번 이상 제패한 90후 기사’의 탄생이다. ‘90후’는 1990년 이후 출생한 세대를 의미하는 중국식 표현으로, 중국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지금까지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중국기사는 16명으로 적지 않은 숫자다. 하지만 이중 두 차례 이상 우승한 기사는 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젊은 피’를 대표하는 90후 기사는 없다. 2012년 이후 90후 세계대회 우승자는 8명이나 나왔지만 모두 단발우승에 그쳤다.
1997년생인 커제는 올해 백령배에서 우승했다. 따라서 커제의 삼성화재배 우승은 ‘영웅 가뭄’ 끝에 단비 같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현지 언론과 팬들의 열광은 이들이 얼마나 젊은 스타의 탄생을 기다려왔는지 실감하게 했다.
한국과 중국 바둑전문가들은 “중국바둑계에 커제의 시대가 열렸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프로기사들도 커제의 강함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인터넷바둑전문사이트 사이버오로의 손종수 상무는 “커제는 전성기 시절의 요다 노리모토를 연상하게 하는 바둑”이라고 평했다. 초반 포석과 중반전투, 정밀한 끝내기까지 균형이 딱 잡혔던 요다는 천하의 이창호마저 고전할 정도였다. 커제 역시 초·중·종반이 고루 강해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커제는 대중과 언론의 ‘입맛’을 아는 스타로서의 자질도 갖췄다. 12월30일 몽백합배 결승전 상대인 이세돌에 대해 “이세돌이 우승할 확률은 5%”라고 단언해 자국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선배스타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었다. 커제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제작 이야기도 들린다.
중국바둑계는 커제가 앞으로 세계바둑계를 평정하는 ‘제2의 이창호’가 되어주기를 희망하는 눈치다. 요즘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최택이 중국에서 열린 세계바둑대회에 나가 중국과 일본기사 5명을 차례로 물리치고 극적으로 우승하는 장면을 다뤄 전 국민을 감동시켰다. 이는 2005년 이창호가 제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실제로 이룩했던 대사건이다.
과연 한국바둑은 심기일전해 중국에 내어준 세계바둑최강국의 명성을 되찾아올 수 있을까. 응답하라 2005. ‘제2의 이창호’는 역시 한국에서 나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