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美者生存… 자연은 아름다움을 택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2일 03시 00분


◇자연의 예술가들/데이비드 로텐버그 지음/정해원 등 옮김/500쪽·2만5000원·궁리

20여 년 전 ‘프랙털 이론’을 시각적으로 소개한 TV 뉴스 꼭지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현란한 색깔의 기하학 도형이 대칭을 이루며 끝도 없이 이어지는 광경은 흡사 우주를 연상시키는 그 무엇이었다. 수학이론이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단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범인(凡人)의 눈에는 과학과 예술이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분야로 여겨졌기에 그런 단상은 이내 사라졌다.

이 책은 기자의 단상이 한낱 실없는 생각이 아님을 보여준다. 철학과 음악을 전공한 재즈 아티스트인 저자는 예술과 과학이 별개일 수 없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특히 예술은 이미 자연계에 실존하는 것으로,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책의 핵심 근거는 적자생존(適者生存)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생명체의 미적인 행위가 존재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호주 등에 서식하는 정자(亭子) 새의 독특한 구조물 짓기 행위가 대표적이다. 수컷 정자 새는 암컷 앞에서 짝짓기 구애를 하는 장소에 아름다운 구조물(정자)을 짓는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정자 새는 적자생존으로 해석하기에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정자의 미적 완성에 사력을 다한다. 시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자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눈에 띄는 화려한 색상으로 정자를 치장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극도로 높아진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히 암컷에 눈에 들어 짝으로 선택되려는 수단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능력 자체가 곧 생존과 직결되는 이른바 ‘미자생존(美者生存)’의 관점을 주장한다. 저자는 진화론의 적자생존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미자생존은 진화로부터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적자생존만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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