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간의 진화 과정을 다룬 고인류학이나 진화심리학 책이 자주 나온다. 고인류학은 주로 고고학적 자료가 되는 인간의 뼈와 유물에 관심을 갖는다. 진화심리학은 인류 행동의 원인을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책은 진화를 문화적, 인지적 관점에서 설명하다는 점에서 다르다.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대 ‘인지 및 진화인류학 연구소’ 소장을 지낸 진화인류학자다. 저자는 인류가 유인원과 다른 이유는 결국 인지적, 문화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집단적으로 노래하고, 종교를 만들고, 언어를 쓰는 것 같은 인지 활동이 진화에서 우연히 파생된 부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진화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인류는 공동체 규모를 끊임없이 늘려야 했다. 처음에는 맹수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는 제한적인 자원에 접근하기 위한 교역 관계를 유지하고, 다른 종족의 습격을 방어하기 위해 공동체의 규모를 꾸준히 늘렸다.
인간의 뇌도 집단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 커졌다. 영장류 그룹의 크기는 뇌의 크기와 연관이 있다. 뇌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룹이 작다. 뇌가 작은 한 원숭이 종은 5∼6마리가 같이 다니는데, 침팬지는 70∼80마리가 집단을 형성한다. 인간의 뇌 크기를 원숭이나 침팬지와 비교해 보면 집단의 크기는 140명 정도가 나온다. 저자는 이런 결론을 통해 한 개인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친구의 범위가 150명이라는 ‘던바의 법칙’을 주장하기도 했다.
저자는 인간 진화의 역사는 사회적 유대감 형성, 커진 몸, 그리고 뇌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신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등에 적응하는 여정이었다고 결론짓는다. 결국 현재의 인류를 만든 것은 생리적, 사회적, 인지적 구조를 조금씩 수정해 나가면서 획득한 일련의 적응 과정이다. 인류는 뇌를 발전시켜 과학과 예술을 만들어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과학과 예술은 다시 뇌와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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