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는 살아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 기복이 심한 삶을 살았다. 고속으로 이룩한 성공, 부인과 아들의 죽음, 유모와의 스캔들, 미술시장의 변화로 인한 파산 등으로 모자이크된 63년의 삶이었다. 그는 이 삶의 굴곡을 30여 점의 자화상으로 기록했다.
‘유대인 신부’는 그가 사망하기 2년 전, 삶의 남루함이 극에 달했을 때의 작품이다. 인생의 넓고 깊은 고뇌의 강을 건너온 회한과 생에 대한 감사함을 격정적이면서도 온화하게 표현했다. 성서에 나오는 이삭과 레베카 부부를 네덜란드인 한 쌍을 모델로 삼아 결혼에 임하는 부부의 정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몸과 마음에서 우러난 정이 배어 있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렇게 한번 안아보고 안겨봤으면 하는 마음마저 갖게 한다. 굳은 약속의 표시로 금체인 목걸이를 걸어주고 신부의 가슴에 살포시 내려놓은 남편의 손은 나비처럼 조심스럽고 따스하다. 넘치는 정겨움은 거친 손 마디마디에까지 숨어서 소리를 내는 듯하다. 렘브란트는 부부의 정을 죽음도 앗아가지 못할 것처럼 심오하게 그려냈다. 말년에 명장의 수준을 넘어선 그의 예술적 영감은 마치 어둠에서 빛을 긁어내듯 걸작을 탄생시켰다.
신부는 목걸이, 팔찌, 반지 등으로 몸을 장식함으로써 결혼 의식을 더욱 빛나게 했다. 특히 속박을 상징하는 목걸이임에도 얼굴 가득 퍼져 가는 수줍은 미소는 속박이라도 가장 아름답게, 기꺼이 받아들이는 다짐일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이 작품과 이 주일 동안 함께할 수 있다면 내 생의 10년을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서 받은 깊은 감동을 표현했다. 네덜란드의 두 천재 화가가 2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영적인 접속을 이루게 해준 작품인 셈이다. 렘브란트는 팔레트나이프로 물감을 으깨고 문지르고 덧바름으로써 남자 옷소매를 황금색 파도가 꿈틀거리는 듯 묘사했다. 그 당시에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파격적인 기법이었다. 이 방식은 후에 고흐도 즐겨 사용했다. 물감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만끽한 그의 붓은 결혼에 대한 깊은 의미를 한 편의 시를 지어내듯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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