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나타난다. 술꾼들은 깜짝 놀랄 이야기지만 고려, 조선시대에는 ‘해장국’이 없었다. 해장국은 ‘해정+장국’이다. ‘해정(解정)’은 ‘술을 깨우다’는 뜻이다. 장국은 ‘장갱(醬羹)’, 즉 된장 등으로 끓인 국이다. ‘술 깨우는, 된장 넣은 국물’이 해장국이다.
해장국의 기원(?)을 고려시대 ‘성주탕(醒酒湯)’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 않다. 통역관 교과서 격인 ‘노걸대’에 ‘새벽에 일어나 머리 빗고 얼굴 씻고, ‘성주탕’을 먹고, 점심 한 후에 떡 만들고 고기 볶고’라는 문장이 나온다. 내용을 보면 성주탕은 해장국이라기보다 ‘약’이다. ‘탕(湯)’은 국물이 아니고 약일 때가 많다. 국물은 ‘갱(羹)’으로 표현했다.
1499년 발간된 우리 고유의 의서 ‘구급이해방’에는 술병(酒病) 치료법이 있다. 과음으로 구토, 손발 떨림, 정신 어지러움, 소변 불편이 나타나면 갈화해정탕을 권한다. ‘갈화(葛花)’는 칡꽃이다. 칡꽃, 인삼, 귤껍질 등 여러 약재를 넣고 달인 물을 먹으면 술병이 낫는다고 했다. 이 치료법의 끝부분은 술꾼들이 새길 만한 내용이다. ‘갈화해정탕은 다 부득이해서 쓰는 것이지, 어찌 이것만을 믿고서 매일 술을 마실 수 있겠는가?’ 우리 선조들은 해장국을 먹어야 할 정도의 음주는 ‘병’이라 여겼다. 병은 탕(약)으로 다스렸다.
술을 깨게 한다는 ‘성주’는 조선시대 기록에도 자주 나타나지만 해장국, 성주탕이란 표현은 없다. 조선시대까지도 해장국은 없었다. 최영년(1856∼1935)의 ‘해동죽지’(1925년)에 나오는 ‘효종갱(曉鐘羹)’을 해장국으로 여기는 것도 틀렸다. 효종갱은, 이른 새벽, 파루 칠 때 남한산성 언저리에서 4대문 안으로 날랐다. ‘프리미엄 국물’이지 해장국은 아니다. 그나마 효종갱은 일제강점기에 나타난다.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도 ‘주사거배(酒肆擧杯)’에 자그마한 가마솥이 두 개 보인다.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국물은 해장국이 아니라 술국이었을 것이다. 술국은 술을 마실 때 한두 숟가락 가볍게 마시는 것이다. 된장 푼 물에 마른 멸치, 우거지 등을 넣고 푹 끓인다. 탁주 한두 잔 정도는 신 김치와 술국으로 마시는 게 보편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창업한 해장국집들도 마찬가지. ‘이른 새벽 동소문 밖에서 땔감, 나물 등을 가지고 온 이들이 요기를 했다’고 말한다. 밥상 한 귀퉁이에 술국과 막걸리 한 잔도 곁들였을 것이다.
예전의 해장법은 낭만적이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이승소는 ‘삼탄집’에서 ‘포도의 효능은 여럿 있지만 술을 깨우는 공로가 가장 크다’고 했다. 고려 문신 이규보의 아들 이름은 ‘삼백’. ‘하루 삼백 잔을 마신다’는 이태백의 시 ‘장진주’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아들이 어린 나이에 술을 마신다. 속이 탄 아버지 이규보는 술의 폐해를 아들에게 일러준다. “술은 창자를 녹게 해 몸을 망친다. 결국 폐인이 되고 남들이 미치광이라고 놀린다.” 이규보도 과일로 해장을 했다. ‘서왕모에게서 훔쳐온 복숭아로 입맛을 돌게 하거나 술을 깨게 한다’고 했다(동국이상국전집).
선조들은 바람을 쐬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깨웠다. 고려 말의 목은 이색은 “대나무로 지은 방에서 바람 부는 창밖을 본다. 여린 잎의 차를 마시며 술을 깨운다”고 했고(동문선 설매헌부), 다산 정약용도 “찰랑찰랑 물결은 뱃전을 치고 스치는 바람이 술을 깨운다”고 했다(다산시문선).
조선시대 기록에는 ‘성주석(醒酒石)’이 자주 나타난다. ‘술 깨우는 돌’이다. 이 돌의 주인은 당나라의 이덕유다. 그는 평천장이라는 대저택을 짓고 각종 나무, 꽃, 돌 등을 옮겨 두었다. 그중 이덕유가 가장 아꼈던 것이 바로 성주석이다. 술에 취하면 늘 이 돌에 앉아서 술을 깨우곤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해장’과 ‘해정’이 혼용된다. 총독부 관리가 만취, 종업원 폭행으로 용산서에 연행된다. 동아일보(1926년 9월 12일자) 기사는 총독부 관리가 ‘해장국’도 못 얻어먹고 총독부 차량을 타고 빠져나갔다고 조롱한다. 1938년 3월 12일자 기사에는 모범농촌 건설을 위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시고, 남에게 무작정 시비를 거는 해정술’을 금해야 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해장술에 취하면 위아래 못 알아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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