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의 神品名詩]탈놀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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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국보 121호).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국보 121호).
탈놀이 ―이영식(1952∼ )
슬픔을 증거하기 위해
턱이 빠지도록
웃고 있는 화상을 보아라

하회탈
그리고 또 병산탈,
촘촘 살펴보면
묵시(默示)를 건너온 나뭇결에
피가 돈다
돌아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백정, 할미……
사과 알 같은 심장
풀무질하며
저 텅 빈 눈구멍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있느니

장삼이사 다 모여라
흉허물 벗고 판 한번 벌여보자


덩더꿍 덩더꿍 산이 들썩인다. 얼쑤 얼쑤 강이 너울진다.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총각, 별채, 떡다리…, 사람 위에 어디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다더냐. 사람의 탈을 쓰고 나오면 잘나고 못난 것도, 높고 낮은 것도, 있고 없는 것도, 배우고 못 배운 것도 없이 그저 사람인 것, 이 티끌먼지의 세상 기쁜 일 있으면 슬픈 일 있고, 만나는 일 있으면 헤어지는 일 있고 우리네 살면서 참아왔던 것, 억누르고 있었던 것 모두 싸잡아 걷잡을 수 없이 넘쳐나는 신명으로 한마당 춤판을 벌여 보자. 하늘이 돌고 땅이 흔들리고 안동 땅 하회 물이 돈다. 물이 돈다.

하회(河回)탈 및 병산(屛山)탈(국보 121호)은 안동 하회리와 이웃마을 병산리에서 고려 중엽부터 마을의 평화와 안녕, 화합과 신풀이의 탈놀이를 위해 웃고 울고 찡그리고 잘생기고 못생긴 얼굴을 오리나무에 새기고 옻칠을 두 겹 세 겹으로 올려 색을 냈다. 하회탈은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잘 살리는 형상과 거기에 어울리는 색깔을 입혀 조형미와 예술성이 뛰어나다. 그에 비해 병산탈은 하회탈과 달리 턱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이것은 입을 자유롭게 놀려 재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기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전하지 않는 것으로 별채탈이 있는데 고려 때 벼슬 이름인 별차(別差)에서 딴 것이며 대사 가운데 고려 최고 관직이었던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나오는 것으로 보건대 탈놀이의 기원이 그 시대부터인 것을 증거하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고관대작까지도 서민들의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게 한다.

어디 하회탈춤이나 병산 별신굿뿐이랴. 이 나라 방방곡곡 흰 옷의 백성들 흘기고 뒤집고 까부는 탈춤으로 가진 설움 신명 다 쏟아냈거니. 시인은 “사과 알 같은 심장/풀무질하며/저 텅 빈 눈구멍으로/세상을 내다보고 있느니” 하고 움찔, 이 시대에 침을 놓는다.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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