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세번째 작품 ‘노크하지 않는 집’ 객석 따로없는 연극·전시 합친 콘셉트 이항나 연출…관객 참여·엔딩 등 변화
“오랜 만에 악수라도 할까요?”
이항나(45)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항나는 참 매력있게 웃는 사람이다. 일흔 두 가지쯤 웃는 표정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정말 재밌어’라는 듯 얼굴을 상대방 쪽으로 들이대면서 깔깔깔 웃는 모습이 가장 좋다. 오늘 인터뷰에서는 몇 번쯤 볼 수 있을까.
오늘은 배우가 아닌 연출가 이항나로 만났다. 학교, 영화, 드라마, 연극무대를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그녀는 요즘 ‘노크하지 않는 집’ 공연을 준비 중이다.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짧고 굵게’ 공연한다.
“2013년에 초연을 했고, 2014년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이 3차 앙코르 공연이다.”
지난해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유료관객 점유율이 150%를 찍었다. 100%가 만석인데 어떻게 150%가 되었을까. 다른 사람 무릎 위에 앉아 관람이라도 한 걸까.
“그건 아니고. 이 작품은 드라마 전시를 표방하고 있다. 말 그대로 연극과 전시회를 합쳐 놓은 콘셉트다. 여자들이 사는 다섯 개의 방은 무대세트이자 전시물이 된다. 객석도 따로 없다. 관객은 무대를 둘러싼 공간 아무 곳이나 털퍼덕 앉아 공연을 보면 된다. 따로 객석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보니 정원초과 상태에서 공연을 한 것이다.(웃음)”
이 작품은 이항나가 애착을 갖고 진행해 온 ‘그녀의 방’ 시리즈 중 세 번째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 실린 동명의 단편소설을 갖고 이항나가 대본을 썼다. 이항나는 이 작품의 연출가이자 작가이다. 이항나는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밤에 딸 아이 재워놓고 카페에 가 노트북 펼쳐놓고 대본을 썼다. 그 아이가 이번에 유치원에 들어간다”며 웃었다.
‘노크하지 않는 집’은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미디어아트를 망라한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다. 이런 류의 시도는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을 만들어 내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각각의 장르 재료들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잘 어울린다. 문학이 음악같고, 미술이 연극같다.
3년 간 세 차례 공연되면서 조금씩 진화했다. 가장 큰 변화는 관객의 참여와 엔딩이다. 미리 선발된 다섯 명의 관객은 여자들이 살고 있는 다섯 개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특혜를 얻는다. 일명 ‘고스트 관객’인 이들은 일종의 소품이다. 배우는 고스트 관객을 베고 눕기도 하고, 그 앞에서 양치질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불쑥 바지를 벗기도 한다.
엔딩은 더욱 근사해졌다. 다섯 개의 방은 하나가 되고, 가운데는 연못이 된다. 다섯 여자를 상징하는 다섯 마리의 물고기가 방으로 들어온다.
“미디어아티스트 김제민 감독의 작품이다. 고생을 많이 하셨다. 아마 이항나가 지긋지긋하셨을 것이다. 돈도 얼마 안 드리면서 ‘물고기 만들어내라’고 했으니.”
왜 제목이 ‘노크하지 않는 집’일까. 후반부에 왜 배우들은 서로의 방과 배역을 바꿀까. 왜 배우들은 자꾸만 같은 행동, 장면을 반복할까.
이항나는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 시원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덜 질문하고 보기. 그리고 자신을 내버려 두기”라며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을 했을 뿐이다. “생각은 연출자와 배우가 열심히 할 테니 여러분은 즐기세요.”
‘노크하지 않는 집’이 끝나면 이항나는 내년 1월22일에 개막하는 연극 ‘날 보러 와요’ 연습에 매진할 예정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전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으로 1996년 이항나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녀의 방은 100명이 보면 100명이 가져가는 것이 모두 다른 작품입니다. 반복되는 우리들의 일상이 아름답게 보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기자님도 꼭 와서 보아 주세요. 뒤풀이 맥주는 제가 살게요.”
이항나가 “그럼 또”하며 손을 내밀었다. 마음 속 그녀의 방을 엿보고 난 듯한 만남이었다. 노크를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나저나 웃는 얼굴에 속아(?) 질문 하나를 놓치고 보냈다. ‘노크하지 않는 집’에 살고 있는 다섯(실은 여섯이다)명의 여자들은 누구인가. 혹시 당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