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볼 때 여유가 있으면 재래시장이나 전통시장을 가곤 한다. 볼거리도 많을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튀김, 어묵, 옛날 호떡, 족발, 순대 등 먹거리를 보면 마음까지 흐뭇해진다. 한국에 처음 와서 즐겨 먹던 것도 길거리 음식이다. 저녁때면 지하철역 앞에서 아주머니가 바쁘게 구워 팔던 붕어빵, 호떡이나 포장마차에서 파는 우동, 돼지껍데기도 모두 정겨운 음식이다.
한국과 달리 몽골은 길거리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다. 남부지역 3분의 1이 고비 사막이고 또 대부분이 초원이라 건조하고 먼지가 많다. 특히 기온이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는 겨울에는 길에서 뭔가를 먹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집 안에서도 서서 먹는 것은 몽골식 문화가 아니다.
TV에서 매일 방송되는 한국 드라마를 본 몽골 사람들은 길거리 음식을 사먹거나, 포장마차에서 안주와 함께 소주를 마신 후 한강에 가서 소리를 한번 질러보거나 아니면 연인과 함께 한강에서 데이트를 하는 게 한국에 가면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다. 한국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다음 날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한국식당들이 몽골사람들로 붐비는 것도 한류의 힘인가 싶다. 몽골 내 한국식당이 100개가 넘어섰다고 한다.
몽골 간식은 대개 우유나 밀가루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아룰’이라 부르는 우유과자나 치즈 등 유제품, 그리고 빵과 과자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먹자골목이나 지역별 맛집이란 개념은 몽골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시장도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은 있지만 즉석에서 즐길 수 있는 간편한 먹거리들이 없어 아쉽고 심심하다.
울란바토르에는 종합시장 자동차시장 가축시장 등 큰 시장이 몇 곳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시장은 ‘나란툴’이라는 종합시장이다. 몽골을 찾는 외국인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전통 옷, 특히 여우 털로 만든 겨울 모자다. 신학기를 앞둔 8월에는 지방에서 오는 대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져온 캐시미어와 양털, 가죽이 많다.
연말이나 설 대목이면 시장이 물건으로 가득하고 사람들로 붐빈다. 설에는 주로 양고기를 먹는다. 몽골에서는 양고기를 넣은 만두를 즐겨 먹는다. 한국과는 달리 양념한 고기만 넣어서 만든다. 음식을 만들기 위한 육류 외에 가족들과 찾아오는 친척 친구 손님들에게 줄 선물을 시장에서 산다. 몽골에서는 집에 설 인사차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만 선물을 준다. 집에 찾아오지 않은 친지들에게 설 선물을 보내는 한국의 문화가 처음에는 꽤 낯설었다. 남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답이 의외로 간단했다. “다들 바쁘니까.”
겨울철인 요즘은 몽골의 시장에 소, 양, 염소 등 고기가 많을 때다. 요즘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직거래를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겨울에 먹을 김장을 하듯이 몽골에서는 겨울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겨울 내내 먹을 고기를 대량으로 사다가 준비한다. 대가족이면 소 한 마리에 양이나 염소를 몇 마리 더 준비하지만, 도시 가족들은 대개 어린 소 한 마리를 산다.
이렇게 겨울에 대비해 고기를 준비하는 것을 ‘이디시’라고 한다. 시골에서는 이디시 준비하는 날 고기와 내장 등을 양념해 삶아 동네 사람들끼리 나눠 먹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소와 송아지, 둘로 나누어 부르는 데 비해 몽골에서는 우헤르(큰 소), 슈드렌(아직 덜 자란 소), 비야로(어린 소), 토갈(송아지) 네 가지로 나눠 부른다. 슈드렌이나 비야로는 고기가 부드럽고 양고기보다 지방이 적어 많이들 산다. 어린 소 한 마리는 50만 투그리크(약 30만 원) 정도 한다. 우헤르도 가격은 거의 같다. 한국에는 한우도 있고, 비육우도 있고, 수입 쇠고기도 있는데 몽골에서는 한 종류의 쇠고기만 판다. 몽골은 쇠고기 수출국이다. 한국 소는 한우라고 부르니 몽골 소는 ‘몽우’라고 불러야 하나. 이렇게 겨울을 대비해 준비한 고기는 추운 겨울날 밖에 보관하기도 하고 아파트에서는 베란다에 두기도 한다. 16일 울란바토르 기온이 최저 영하 21도, 최고 영하 9도니 몽골은 겨울엔 냉동실이 필요 없다.
가끔 큰 마트에서 양갈비를 팔 때가 있는데, 그걸 보면 반갑다. 그래도 한국에 오래 살다 보니 양고기는 있어도 별식으로나 먹게 된다. 연말이 돼 가는데 만약 한국에서 이디시를 준비해야 한다면 예산을 따져서는 수입 쇠고기를, 그리고 입맛을 따져서는 한우를 준비하지 않을까. 친정어머니께 전화해 무슨 고기로 준비하셨느냐고 여쭤보니 비야로 뒷다리 그리고 갈비를 포함한 앞다리로 사 놓으셨다고 한다.
“작년에는 슈드렌 사지 않았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부드러운 비야로가 더 입에 맞네.”
※이라 씨(38)는 몽골 출신으로 2003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2010년부터 4년간 새누리당 경기도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다문화여성연합 대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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