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어느 덧 서산마루에 걸려 있다. 황혼의 노을이 아름답다고는 하나 잠깐이다. 매년 이맘때면 아쉬움 속에 발을 동동 구르며 지는 해를 바라본다.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는 의미는 사람이 부여한 것이다. 자연은 섭리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해가 기우는 서녘을 보며 아쉬운 감상에 젖는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지나온 일 년의 행적을 돌아보고, 성시의 번화가의 와글대는 소리들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분명 연말이구나’ 하는 아쉬움의 순간이다. 가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문학회, 동창회 등 각종 단체의 송년 모임을 알려줄 때마다 연말이 더욱 실감 난다.
“아, 흘러가는 세월 어찌할 수 없구나. 세월은 가기만 하고 어찌 오지는 않는가? 천지는 장구하여 시작도 끝도 없는데 인생은 순식간에 끝나는구나.”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독백이 마치 덧없는 생에 대한 탄식으로 읽어지는 때가 연말인 요즈음일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 끄트머리에 닿았다. 설한풍의 탄식소리 굽이굽이 천년 지나 오늘에 이르러서도 모진 세파에 시달리는 가슴을 더욱 시리게 만든다.
지난 시간은 아무리 너그러운 눈으로 보려 해도 빗나갔고 밝은 듯했으나 암울했으며 늘 새로운 시작이다 싶었는데 헛걸음이었다. 개인적으론 무의미한 한 해였다. 아까운 세월만 흘러갔다. 한 해를 지날 때마다 희망적이라기보다 회한에 휩싸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톡 까놓고 말해 ‘돈’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말하는 건 모두 돈이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 위에 돈이 군림하는 시대가 되니 사람들의 눈에는 사람이 안 보이고 돈만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은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지!”라고 입으로는 읊조리면서 막상 현실에서 부닥치면 돈 앞에서 고개를 숙이다 못 해 엎드려 절까지 한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최악의 가치다. 어린애부터 늙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불치의 돈 병에 걸려서 이 사회는 불치의 돈 병 환자들로 차고 넘친다. 치료할 약이 없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비로소 사람이 정해 놓은 삼백예순다섯 날이 거의 다 가고 말았다.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 드니 헤치고 지내 왔던 길이 잎이 져 버린 숲길처럼 휑하다. 아픔과 갈등, 격변과 혼란, 다들 어렵다고 입을 모은 한 해.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데 있다. 우리 모두 과거를 잊고 희망의 새해 병신년(丙申年)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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