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놀래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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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국립국어원은 14일 ‘마실’ ‘잎새’ ‘이쁘다’ ‘-고프다’ 등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와 활용형 11개를 표준어와 표준형으로 인정했다. 이 낱말들은 그동안 ‘마을’과 ‘잎사귀’의 방언으로, ‘예쁘다’ ‘∼고 싶다’의 틀린 표현으로 규정됐던 것들이다. 하지만 ‘놀래키다’ ‘들이키다’ ‘퉁치다’ 등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낱말 등은 이번에도 빠졌다. 앞으로도 언어 사용 실태와 여론조사 등을 통해 언중의 말 씀씀이를 반영하겠다고 하니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뉴욕타임스 놀래킨 오바마의 독자투고’

‘졌지만 빛난 정현…세계를 놀래키다’

얼마 전에 큼지막하게 실린 신문 제목이다. 앞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소통법을, 뒤에 것은 올 US오픈테니스 2회전서 세계 5위 선수에게 분패한 정현 선수를 다루고 있다. 허나 우리 사전대로라면 ‘놀래킨’과 ‘놀래키다’는 틀린 말이다.

사전은 ‘놀래키다’를 ‘놀래다’의 충청 방언이라고 설명한다. ‘놀라다’의 사동사로 ‘놀래다’만을 인정하고 있다. 과연 설득력이 있나.

사람들은 표준어인 ‘놀래다’는 거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놀라다’에 사동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이키’가 붙은 ‘놀래키다’를 쓴다.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그를 놀랬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긴 있을까. 열이면 열 모두 “놀래켰다”고 할 것이다.

놀래키다는 우리말 조어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지난 일을 생각하거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다는 뜻의 ‘돌이키다’는 ‘돌다’의 어간 뒤에 ‘이키’가 붙은 말이다. 돌이키다는 표준어인데 놀래키다가 표준어가 안 될 이유가 없다. 아 참, 놀래다를 ‘놀라게 하다’로 늘려 쓰는 건 괜찮다. “사람 왜 이렇게 놀라게 해요”처럼.

필자는 본란에서 마실과 잎새는 서둘러 표준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쁘다’도 오랫동안 ‘예쁘다’의 틀린 표현으로 묶여 있었지만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해왔기에 표준어가 됐다. 이쁘다가 표준어가 된 덕분에 ‘이쁘장하다’ ‘이쁘장스럽다’ ‘이쁘디이쁘다’ 등 말맛 좋은 관련 낱말들도 앞으로는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됐다.

내일은 성탄절. 요즘 젊은이들은 깜짝 선물이나 행사를 ‘서프라이즈’라고 한다. 놀래키는 것과 같다. 올 성탄절에는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과 행사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쯤 놀래켜 주는 건 어떨까.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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