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그 작가들의 중편 모음이다. 작품들은 흥미롭게도 모두 2008년 한 해의 굵직한 사건들을 소재로 삼았다. 소설로 쓴 2008년 기록인 셈이다.
정태언 씨의 ‘성벽 앞에서―어느 소설가 G의 하루’는 삼류 소설가 G가 하루 동안 서울 시내를 걷는 이야기다. 박태원의 유명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다. G는 2008년 일어난 숭례문 화재 사건을 소재 삼아 소설을 써서 등단했지만 도무지 이름을 얻지 못한 작가다. 서울을 걷다가 홍예문의 용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환상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꿈꿔 본다.
정 씨의 소설이 ‘숭례문 화재 사건’을 모티브 삼아 썼다면 허택 씨의 ‘대사 증후군’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에 놓인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건설계의 전설로 불렸던 화자는 세계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노숙자로 전락한다. 금융위기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은 가운데 욕망으로 가득 찼던 화자가 가족을 떠올리며 정을 그리워하는 모습은 애틋하다. 이경희 씨는 ‘달의 무덤’에서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으로 기름펄에 빠져 사망한 사내의 아들 사연을 들려준다. 이 사내의 죽음으로 인근 주민들은 막대한 보상금을 받았지만, 그 돈을 다 써버린 바람에 나타난 아들에게 제 몫의 보상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조현 씨의 ‘선택’은 대운하 공사를 SF로 변주하고, 양진채 씨의 ‘플러싱의 숨 쉬는 돌’은 광우병 시위와 오래전의 학생 운동의 간극을 짚는다.
2008년은 이렇듯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던 해다. ‘선택’의 작가들에겐 소설가로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다룬 이슈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뜨거웠던 시기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회고하는 작가들의 실험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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