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카페]뉴욕의 민낯 포착한 사진첩 ‘뉴욕의 사람들: 그 이야기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8일 03시 00분


길거리서 만난 수많은 얼굴은 우리 자신의 얼굴

뉴욕은 화려하다. 그래서 오만하다. 적어도 오만하게 느껴진다. “뉴욕에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인간에게 필요 없는 것이다.” 한 뉴요커가 이런 말이 있다고 알려 줬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어떤 욕구나 갈증도 다 채워줄 수 있는 도시란 얘기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증언한다.

“뉴욕에서 지루함을 느낀다면 그건 당신 잘못이에요. 뉴욕 탓이 아니에요.”(1946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의 주연 여배우 머나 로이)

지난해 전 세계에서 뉴욕으로 몰려온 관광객은 무려 5640만 명. 통계청이 2013년 기준으로 발표한 남한 인구 5021만 명보다 619만 명이나 많다.

10월 출간 이후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뉴욕의 사람들: 그 이야기들(Humans of New York: Stories·사진)’은 뉴욕의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채권중개인으로 일하다 실직한 뒤 전업 사진작가로 나선 브랜던 스탠턴 씨(31)가 뉴욕 길거리에 만난 보통 사람들을 찍은 사진첩이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수많은 사진과 사연 중 일부를 추려서 428쪽 안에 담았다. 그는 팔로어가 1000만 명이 넘는 파워 블로거이자 2013년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30세 미만 30명’에 선정된 인사.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또는 열등한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는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나누고 싶고, 아픔을 달래주고 싶어진다. 보통 사람이자 나약한 존재인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벤치에 누워 있는 한 노숙자가 카메라를 향해 말한다. “저는 지금 여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여대생처럼 보이는 젊은 백인 여성에게 물었다. “살면서 죄책감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엄마 아빠에게 ‘저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에요.”

조직폭력배로 감옥에 10년이나 수감됐던 사실을 털어놓은 중년 남자, 어릴 때 성적(性的) 학대를 받았으나 지금은 미래를 내가 결정한다고 강조하는 젊은 여성도 나온다. 뉴욕 경찰(NYPD)을 욕하며 가운뎃손가락을 세운 흑인 청년들이 등장하고, 덩치가 너무 커서 ‘왕따’ 인생을 살아온 백인 남자가 처절한 고독을 하소연한다.

공원에서 팬티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던 인심 좋게 생긴 배불뚝이 백인 아저씨는 나름 터득한 삶의 철학을 알려준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고함치면 그 소리가 그에게 더 크게 들리나요, 당신에게 더 크게 들리나요. 화내면 당신만 손해예요. 저는 100세까지 살고 싶어요. 그래서 지난 40년간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다고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 작가를 백악관에 초대했다. 대통령은 싱글맘으로 힘들게 살면서도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어머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른이 돼서야 깨달았죠. 엄마도 회의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말이죠.”

이 책은 왼손에 맥주 캔 하나 들고 있는 노숙자의 모습에서 시작해 “제 인생은 끝났어요”라고 애처롭게 말하는 노숙자의 사진으로 끝난다. 우리의 삶이 저들 노숙자와 얼마나 다르겠느냐는 의도가 담긴 것일까.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우리 인생이니까.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뉴욕#사진첩#뉴욕의사람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