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처럼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시기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과거에는 인문학을 푸대접하는 세태를 탄식하는 인문학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가끔 있었고, 그것이 ‘인문학 위기론’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창조의 원천은 인문학”이라고 한다. 대학에서는 인문학 최고위 과정이 개설되고, 기업은 유명 인문학 강사들을 초빙하고, 최근 어느 공학대학원에서는 ‘테크노 인문학’으로 석사학위 전공 과정까지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어느새 인문학의 백화제방 시대가 온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실상은 정말 부끄러운 모습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무총리 산하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란 조직이 있어, 그곳에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경제 인문사회연구회 산하에는 정부 출연으로 산업 정책, 과학기술 연구기관이 무려 26곳이 설립되어 있으나, 적어도 한 곳은 반드시 있어야 할 ‘한국인문학연구원’ 같은 기관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인문정책연구위원회’라는 비상설 위원회에서 1년에 한두 차례 회의를 하는 것이 그 위원회 활동의 전부라고 한다.
인문학 연구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연구원도 한 곳 없이 경제인문사회연구회라는 이름의 정부기구가 존재한다니, 참으로 ‘인문’이란 표기가 무색할 뿐이다. 진정 인문학에 대한 상식 수준의 이해만 있었어도 먼저 한국인문학연구원부터 설립하여 그 중심에 놓고 순차적으로 26개의 연구원을 설립했을 것이다. 세종대왕과 정조가 성군으로 우리 역사에서 추앙 받고 있는 것도 바로 인문학연구원인 집현전과 규장각에서 학자들과 어울려 인문학적 연구 성과를 창출해 냈기 때문이다. 세종이 주도한 훈민정음의 창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으로 오늘의 “우리를 우리 되게 했다”는 불후의 정신사적 가치를 후세에 길이 남겼다.
필자는 학교 재직 때인 2007년 8월에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의 지원으로 ‘한국인문학재단 설립의 타당성 및 그 모형 개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당시 선진국 사례를 조사하면서 놀랐다. 미국의 경우 ‘국립인문학재단’을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설치해 4년 임기의 의장 밑에 다양한 산하 기관이 있었다. 6년 임기의 국립인문학협의회는 26명의 위원을 임명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도 하루빨리 대통령(혹은 국무총리) 직속 기관으로 한국인문학연구원을 설립하여 인문학 진흥에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 무엇보다 기초·토대 연구로 동서고금의 인간 삶의 궤적을 연구하여 사람다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나아가 그 연구 결과는 다시 여타의 학문과 학제적으로 융합될 수 있어야만 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문턱에서 세계적인 우리의 기술력을 우리의 인문학이 뒷받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의 진정한 국격이 자연스레 인정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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