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천 스님’이라고, 하지만 딱 보기에도 그냥 ‘해천이 아저씨’ 같은, 배가 불룩 튀어나온 대머리 사내가, 낡은 공책 한가운데 사주를 받아 적으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앉은뱅이책상 뒤에 앉아 있는 ‘해천 스님’은, 아디다스 추리닝에 러닝셔츠 차림이었다. 막 점심을 먹었는지, 방 한쪽 구석엔 빈 짜장면 그릇이 놓여 있었다.
“축시 생이라고 했지?”
“네….”
사내의 물음에 경수는 어쩐지 조금 주눅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랐는데, 경수는 어느새 무릎까지 꿇고 있었다.
그저 심심풀이로 들어온 점집이 맞았다. 외근을 나왔다가 들렀다는 경수와 추어탕으로 점심을 때운 직후였다. 커피나 한잔 마시고 헤어질까,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경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우리도 저거나 한번 볼까? 경수가 턱으로 가리킨 곳을 따라가니 ‘사주, 운세-해천 스님’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사주? 돈 아깝게 뭐 저런 걸 봐?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경수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그쪽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냥, 심심풀이로…. 나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래, 어차피 커피 마실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별 생각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얘가 무슨 고민이 있나,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한 사오 년 안 좋았지? 길운이 들어와도 문이 닫혀 있는 형국이니, 쯧쯧…. 고생했겠어….”
사내의 말에 경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심심풀이라더니…. 나는 경수의 변한 얼굴을 보고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하여간 예전부터 귀 얇은 거 하나는 유명했으니까. 이건 무슨 마분지로 만든 귀도 아니고….
“그래도 다행인 게 내년부터는 차츰차츰 좋아지겠어. 용신이 괜찮아…. 부부 사이도 잘 풀리고.”
“정말 좋아지는 거예요? 사실… 제가 요즘 부부 관계가 좀 안 좋아서….”
경수는 작년, 의욕적으로 시작한 커피숍이 망한 이후 아내와 별거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수원에서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두 딸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아내하고 나이 차이가 좀 나나?”
“여섯 살 차이입니다.”
“여섯 살이라…. 그래서 그런가? 내후년쯤에 자네에게 자식 운이 하나 있어.”
“자식이요?”
“그해에 복락이 꽃을 피울 사주야. 사업도, 자식도, 다 자네 안으로 들어올 대운이야.”
사내는 그렇게 말하면서 누런 이를 드러냈다. 그래, 그래, 이왕 심심풀이로 들을 말, 이런 말이 백 번 낫지. 나는 어쩐지 ‘해천 스님’이라고 자칭하는 그 사내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제 곧 새해니까…. 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해천 스님’이 대신해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귀가 마분지인 내 친구 경수의 얼굴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사업도, 자식도, 다 자기 안으로 들어온다는데… 뭐 더 들을 말이 남았다고….
“한데요, 스님….”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경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사내에게 물었다.
“제가 이게… 그러니까… 육 년 전에 수술을 했는데…. 그럼 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경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내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는 다시 사주 책자를 살펴보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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