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 따라다니다 꿈을 깼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나는 눈물로 따라 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 들에 서고 말았다 어혈의 생각이 저리도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 헝클어진 삶을 쓸어올리며 첫닭처럼 잠을 깼다
누군 핏속에서 푸르른 혈죽血竹을 피웠다는데 나는 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까
2 바람이 분다 가난할수록 더 흔들리는 집들 어디로 흐르는 강이길래 뼛속을 타며 삼백 예순의 마디마디를 이렇듯 저미는가 내게 어디 학적鶴笛으로 쓸 반듯한 뼈 하나라도 있던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더미 같은 나는 스무 해 얕은 물가에서 빛 좋은 웃음 한 줌 건져내지 못 하고 그 어디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 어느새 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시누대처럼 야위어가는 것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저 바다 밖 외딴섬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슬픈 완당노인(悲夫阮堂老人)이 그린 ‘세한도’(국보 180호)가 바깥세상의 안부를 묻는다. 겨울이 와도 잎이 지지 않는 소나무 잣나무 같은 사람은 어디 있느냐고?
추사 김정희는 스물네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가서 당대 청(淸)의 대석학 옹방강(翁方綱), 완원(阮元) 등을 만나 교유하고 돌아와서도 편지글을 주고받으며 실사구시의 고증학 및 금석학에 일가를 이루고 누천 년 중국의 서예사를 뛰어넘는 추사체(秋史體)를 발명, 조선이 낳은 미증유(未曾有)의 세계적 학자이며 위대한 예술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완당이 54세 때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 제주도 대정(大靜)에 위리안치 된다. 연경의 제자 이상적(李尙迪)은 귀중한 신간 서적들을 구해서 보내준다. 완당은 그 정성과 정의(情誼)에 감동하여 세한도를 그리고 발문을 쓴다. “세상은 권력과 이익을 좇아 도도히 마음과 힘을 쏟아 붓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권력과 이익을 좇지 않고 바다 밖에 초췌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권력과 이익을 좇듯 하느냐?”고.
이 ‘세한도’는 일본의 추사 연구가 후지스카 지카시가 소장하고 있다가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이 신품은 이 땅의 시인들의 영감의 샘이 되어 다투어 시를 썼으니 그 하나 “그 어디/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어느새/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라고 시대를 넘어 또 다른 세한도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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