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주나라 여상은 태공망(太公望)으로도 불렸다. 태공망이 제 땅의 제후로 봉해졌을 때의 일이다. 제나라에 화사(華士)라는 사람이 있었다. 화사는 신하가 되어 천자를 모시거나 제후들과 사귀는 것을 의롭지 않은 일이라 여겼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그의 현명함을 칭송했다. 강태공은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화사를 청했다. 그러나 그가 오지 않자 곧 주살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주공이 물었다. “화사는 제나라의 덕망 높은 선비인데 어찌하여 그를 주살합니까?” 강태공이 대답했다. “화사는 신하가 되어 천자를 받들지 않고 제후들과 사귀지도 않으니 제가 어찌 그자를 신하로 삼아 가까이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를 신하로 얻어 사귀지 못했으니 이는 그가 스스로 버려지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제가 세 번이나 청했는데도 오지 않았으니 이는 반역하는 백성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큰 스승으로 떠받들고 온 나라 안의 백성이 그를 본받도록 한다면, 제가 누구와 더불어 군왕을 위해 일할 수 있겠습니까?”
◆평어(評語)◆
강태공의 다스림 덕분에 제나라 백성 가운데는 게으른 사람이 없었고, 또한 제나라는 끝까지 약소국으로 전락하지 않았다. ‘나라를 좀 먹는 다섯 가지 해충(五蠹)’에 관한 한비자(韓非子)의 주장에는 강태공의 이러한 사상이 바탕으로 깔려 있다.
노나라에서 소정(少正)이라는 관직에 있던 묘(卯)라는 인물은 언변에 능했다. 소정 묘도 공자와 마찬가지로 사학(私學)을 열었는데, 공자의 문하에서 소정 묘의 학설에 미혹되어 떠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런 일이 거듭되자 문하생으로 가득 찼던 학당이 텅 비었다. 공자는 대사구(大司寇)에 임명된 뒤에 소정 묘를 죽이고, 시신을 궁문 밖에 내다 걸어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이에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소정 묘는 노나라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 선생님께서 그를 주살하셨으니 장차 오점으로 남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에게는 도적질과도 비교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악(惡)이 있다. 첫째는 마음에 삼가는 바가 없고 음험한 것이요, 둘째는 행실이 비뚤어지고 고집스러운 것이며, 셋째는 말에 거짓이 많고 궤변에 능한 것이요, 넷째는 추하고 부끄러운 일을 기록해 널리 알리는 것이며, 다섯째는 그릇된 것에 순응하면서 그에 탐닉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중에 단 한 가지만 있어도 군자의 주살을 면치 못할 것인데 소정 묘는 이를 모두 겸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소인배 중의 으뜸이라 할 수 있으니 주살하지 않을 수 없다.”
소인배는 다른 사람을 능가할 만한 재능이 없으니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소인배에게 재능이 있어 군자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또한 나라의 일을 도울 방법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 역시 소인배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된다. 소정 묘는 공자의 제자들을 부추겨 꾀어냈으며 고의로 그 가르침을 무시하고 스스로 우위에 서려고 했다. 그런 사람과 더불어 한 조정에서 정사를 돌볼 수 있었겠는가? 공자가 독한 마음으로 손을 쓴 것은 당시 언변을 이용해 정사를 어지럽힌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학술(學術)로써 사람을 죽이는 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후대에까지 본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화사는 헛된 명성만 있고 쓸모가 없는 자이다. 소정 묘는 크게 쓰일 만한 인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쓸 수 없는 사람이다. 현명한 군주는 교묘한 말로 아첨하는 소인배를 능히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평판이 좋은 인물이나 덕망이 높은 선비를 쓸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위대한 성인뿐이다. 풍몽룡 지음|문이원 옮김|정재서 감수|동아일보사 ※ 인문플러스 동양고전100선 네이버카페(http://cafe.naver.com/bookla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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