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동 뒷산지기 산신령’ 김태규의 자연 인생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0일 15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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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학박사 안영배기자의 ‘도시의 異人 열전’] ② 명리학자 김태규

○ 동작산 산신령이 임명한 ‘예비 산신령’

12월 중순 한창 배가 불러지는 달이 산등성이 위에서 차가운 빛을 흩뿌리고 있던 새벽 0시 30분. 장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가 있는 동작산 뒤편의 산기슭. 영하의 날씨이지만 바람이 없어 그리 춥지는 않다. 아버지는 호신용 목검과 새 모이가 묵직하게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아들은 고양이 밥과 물병이 든 가방을 짊어지고 산기슭의 공터로 향한다. 부자(父子)보다 한두 발짝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애완견 ‘봉이’가 능숙한 안내자처럼 목적지로 종종걸음을 친다.

이윽고 뒷산 공터. 아버지는 들고 온 묵직한 목검을 휘두르며 ‘달밤의 칼춤’을 한바탕 흥겹게 춘다. 건강을 위한 무술 수련이다. 그렇게 몸을 푼 뒤 아버지와 아들은 길고양이들의 식사 장소 4곳과 강아지들이 밥 먹는 장소 1곳을 찾아다니며 사료를 넉넉하게 뿌려준다. 고양이와 개들도 정확히 자기들이 밥 먹는 장소와 시각을 알고 있는 듯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고양이들은 자기들끼리 늙거나 병든 고양이들이 먹는 장소를 따로 배려해줄 정도로 질서와 순번을 지킨다.

매년 소설(小雪·올해는 양력 11월 23일)부터 이듬해 소만(小滿·내년은 양력 5월 20일)까지 6개월간은 새들까지 보살펴 준다. 이 시기는 벌레가 없으니 새들이 먹을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쌀과 잡곡, 땅콩 같은 것을 섞어 정해진 곳에 군데군데 뿌려준다. 그 덕분인지 그가 사는 동작동 뒷산은 유난히 산새들이 많다.

1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시각이면 언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동작동 뒷산 산신령’으로 자처하는 김태규 씨(60)와 아들 지원 씨(30)다.

“왜 하세요?”하는 기자의 짤막한 물음에 그 역시 “생명이니까”하고 간단히 답한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땅 위에 사는 생명체니까 보살피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는 거다. 그가 지금까지 6년간 수도승처럼 이 일을 꾸준히 해온 데는 사연이 있다.

2010년 1월 어느 날 밤의 일이다. 그는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에서 가죽 아래 뼈만 앙상하게 남은 병든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너무 애처로워 길가 슈퍼에서 참치 캔을 사와 먹이면서 고양이 눈빛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사람으로 치면 70대 후반의 병들고 지친 할머니의 눈빛이었다. 등을 쓸어주니 눈을 마주치며 “야옹-”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답했다.

그 만남 이후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나고 있을까 걱정하던 차에 꼭 2개월 만에 그가 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후미진 구석에서 할머니 고양이와 재회했다. 고양이는 전보다 더 심하게 말라 있었는데, 다리를 절고 눈과 귀까지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고단위 종합영양제 등 특별식으로 고양이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양이와의 만남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아파트 부녀회장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포고령’을 내린 것. ‘새끼까지 낳는 바람에 피해가 적지 않사오니 먹이 주는 것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할머니 고양이는 대단히 영리했다. 다른 사람의 기척에는 나오지 않다가 조용해지면 ‘야옹’ 하고 그를 반기며 나왔다. 고양이는 적대적인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또 없어졌다. 너무나 쇠약해진 상태의 고양이가 누군가의 눈에 띄어 동물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그대, 참 고단한 삶이었구려. 이 추운 겨울을 나지 못하고 마침내 떠나고 말았구려.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우리 가족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었으니 그로써 위안을 삼으시구려”하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할머니 고양이에게 다짐했다. ‘동작동 뒷산에 있는 길고양이들은 물론이고 살아 있는 것들을 모두 내가 거두어드리리다’라고.

그렇게 해서 길고양이와 유기견들을 보살피기 시작됐다. 이 동네엔 유난히 유기견들이 많다고 한다. 수 년 전 고개 너머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수많은 유기견들이 생겨났기 때문. 대부분 붙들려 안락사했지만 용케 잡혀가지 않은 몇 마리가 무리를 지어 산속에서 야생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유기견들이 사람들에게 위협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똑똑한 대장 강아지의 지휘 아래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숨어 있다가 지정된 시각에 산 아래로 내려와 사료를 먹고 있다. 강아지들은 먹이를 구할 뿐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얼마 전 동작동 뒷산 산신령으로 ‘임명’을 받았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꿈에서 동작동 국립묘지가 있는 호국지장사 삼성각에 계신 산신령님을 만났어요. 산신령이 ‘국립묘지 안쪽은 내가 돌보고 있으니 그대는 뒤쪽을 돌보아 주시게’라고 부탁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그리하겠다고 답했지요.”

이런 꿈을 꾸게 된 것도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호국지장사에 들러 산신령에게 절을 세 번 올리면서 ‘신령님, 저는 저편 뒷산을 돌보는 예비 신령이 되고자 하옵니다’ 하고 기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른 절에 가서도 산신각의 산신령님에게 동작동 호국지장사의 산신령님께 전화 한 통을 넣어달라는 기원을 드렸다는 것. 그게 통했던 모양이라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는 왜 굳이 산신령까지 자처할까.

“살다보면 언젠가 지금 살고 있는 동작동을 떠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리 되면 동네 길고양이들과 산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강아지 무리들을 돌볼 수 없게 된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들을 버려두곤 도저히 떠날 수가 없으니 아예 동작동을 중심으로 돌봄의 영역을 넓혀가기로 마음먹었지요. 또 그 과정에서 동지들을 만나 연대하겠다는 것이 저의 포부이자 장기 전략입니다. 물론 최종 목표는 서울시 전체이긴 하지만 내 능력이나 마음만으로 좀 어려울 것 같아 산신령님의 신통한 힘을 빌릴 필요가 있어요.”

그는 버려진 동물들을 돌보는 행위 자체가 수행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여섯 바라밀’이라는 보살도(菩薩道) 수행에 못지않다는 것이다. 고양이와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고, 매일 빠뜨리지 않으니 나름의 계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이며, 성가셔도 군소리 없이 하고 있으니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라는 생각이다. 또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이며, 매일 밤 하루의 일을 정리하고 반성하면서 사색에 잠기기도 하니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이며, 또 그를 통해 바른 생활과 지혜를 추구하게 되니 그야말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라는 주장이다.
○ 금수저와 흙수저들의 인생 사계절

그는 매일 자연 속에서 1년 사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본업인 명리학에서 개안(開眼)의 깨달음을 덤으로 얻었다고도 했다. 사실 동작동 뒷산 산신령으로 자처하는 김태규 씨는 온라인상에서는 유명한 역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희희낙락호호당’이라는 블로그(http://hohodang.com)에 올리는 글은 게재하는 족족 순식간에 5000회 정도가 검색될 정도로 ‘열혈 독자층’이 형성돼 있다. 예리한 통찰력과 그만의 정밀한 역학 이론으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각국의 운과 미래 등을 풀어내는 ‘글발’에 사람들이 매료되기 때문이다.

그가 주창하는 명리학의 요체는 개인이든 단체든 모든 존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시간의 주기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깨달은 명리학 이론을 ‘자연순환운명학’이라 부르는 이유다.

“1년 사계절, 정확히 말해 24절기의 흐름을 자연에서 꾸준히 관찰하면서 크게 영감을 얻었습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순환해요. 생명이 발아하는 탄생의 봄을 지나면 어김없이 푹푹 찌는 더위가 찾아오고, 이윽고 화려하고 풍성한 열매의 철이 이어지고, 다시 생명이 잠드는 추운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동지와 하지 같은 태양 빛의 순환에 따라 일기가 변하고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 순환의 영향을 받아요. 인간의 삶도 자연의 사계절과 똑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납니다. 그래서 자연의 순환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것은 우리 인생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사람은 봄에 해야 할 일이 있고 가을에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는 각 계절을 대표하는 상징어가 있다고 말했다.

“봄은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때이니 ‘주역’ 계사전이 말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때이며, 여름은 주어지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질 때이니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때입니다. 가을은 이제 얻은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을 하며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때이며, 겨울은 물러나서 세상을 관조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때이지요.”

자신이 어떠한 계절에 있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김태규 씨는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을 보면 인생의 어느 주기를 달리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비유해보자면 ‘금수저’들은 대체로 태어날 때 여름이나 가을부터 인생 주기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흙수저’들은 대체로 겨울이나 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금수저든 흙수저든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계절의 순환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때에 맞춰 행동하면 궁핍한 상황에서도 인생이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거꾸로 가을철 추수해야 할 시기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말 그대로 철부지 인생이 되기 십상이고 불행을 자초하는 꼴이라고 한다.

최근 이 같은 지론을 담은 그의 블로그 글이 누리꾼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당신의 때가 있다’라는 단행본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1971년 무렵 순수한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시작한 명리 공부가 44년 만에 새로운 명리학 이론으로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는 올해 한 갑자(환갑)를 맞았다. 그러면서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맛을 다 체험해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제야 명리 인생론이 환하게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본격 명리학자의 길로 들어서기 전까지 인생의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치렀다.

1955년생인 그는 1981년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후 10여 년간 은행 전산시스템 분야에서 일하며 촉망받는 인재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 조직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한 후 금융시스템 컨설팅 사업을 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외환위기 사태로 쪽박을 차는 아픈 경험을 했다. 인생의 겨울과 봄이라는 쓰라린 계절을 보냈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호구지책으로 운명학 개인 연구실을 운영했고, 2009년부터 지금까지 블로그를 통해 1400여 편의 글을 쓰고 900여 장의 사진과 그림을 생산했다. 그의 블로그에 오른 그림들은 모두 직접 그린 것들이다.

그의 자연순환운명학 글들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열혈 지지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강좌까지 열게 됐다. 그는 ‘자연운명학 교실’(매주 토요일), ‘고전강독 교실’(매주 화요일)을 열어 많은 사람들에게 지적 즐거움과 통찰, 그리고 힐링을 선사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그간의 경험과 동서양을 망라한 독서 지식, 그리고 명리적 지혜를 밑천삼아 대중과 글로 교감하면서 나도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 덕분에 명성을 얻어 강의를 하며 먹고 사니 천생 내가 학자인 것은 맞는 것 같소. 내 인생이 본격 여름철 주기에 접어드니까 이런 뜻하지 않던 일도 생기더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운 때와 좋은 때를 만나게 된다. 기세가 충만하고 의욕이 활활 타는 때도 있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며 좌절의 늪에 빠지는 때도 있다. 사람마다 당면한 때가 다 다른데, 이 ‘한때’를 정확히 파악하면 눈앞의 현재를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마치 차를 운전할 때 전방 상황을 잘 알면 지금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먼저 볼 수 있으면 길을 걷듯 자연스럽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논리다. 그의 인생 경험이 녹아있는 교훈일 것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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