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6]오늘, 한국 문학이 좀 더 밝아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일 03시 00분


223 대 1 경쟁률 뚫고… 도전 10년 만에… 시 이어 시조까지… 당선 9명의 사연들

이제 시작이다. 새해 첫 지면에 첫 작품을 알리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희곡 김경주, 문학평론 문신, 단편소설 이수경, 동화 성현정, 시조 정지윤, 시 조상호, 영화평론 서은주, 시나리오 김희정, 중편소설 김봉곤 씨.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이제 시작이다. 새해 첫 지면에 첫 작품을 알리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희곡 김경주, 문학평론 문신, 단편소설 이수경, 동화 성현정, 시조 정지윤, 시 조상호, 영화평론 서은주, 시나리오 김희정, 중편소설 김봉곤 씨.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수도 없이 그려본 순간이었다. 당선 소식이 어떻게 올지, 그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슴 벅찬 순간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습작을 본 소설가가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작가의 꿈을 꾼 지 10년째, “당선입니다”라는 전화 통보를 받았을 때 이수경 씨(50·단편소설 부문)는 오히려 겁이 났다. “전화가 다시 와서 잘못됐다고 할 것 같아서요. 소식을 들은 딸은 눈물을 쏟았는데 저는 두려움에 떠느라 울지도 못했어요. 일생의 단 한 번 순간을 바보처럼 보냈어요.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 인원은 2005명,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은 9명이다.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인 당선자들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모두 신춘문예 재수, 삼수 혹은 그 이상을 거듭해온 이들이었다. 막상 당선 통보를 받았을 땐 이 축복이 믿기지 않아 오히려 몸을 낮췄다. “회사에서 일하다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조퇴하라고 했지만 퇴근시간까지 일을 다 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성현정·41·동화 부문)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함께 있던 친구가 나보다 기뻐하기에 나는 차분한 척했다.”(조상호·40·시 부문) “학생들의 기말고사 답안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 흥분을 억누른 채 채점을 끝냈다. 그 뒤에 어이쿠, 하는 낱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문신·43·문학평론 부문)

번번이 낙방했지만 작가의 꿈을 거둔 적이 없다. 2012년부터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작품을 투고해온 김봉곤 씨(31·중편소설 부문)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그건 ‘나’의 문제였을 뿐, ‘문학 그 자체를 회의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졸업을 앞둔 그는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문학평론 부문)로 등단한 윤경희 씨의 과제 지도를 받고 있을 때 연락을 받았다. 제자의 당선 소식에 윤 씨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눈물을 보였다. 김희정 씨(44·시나리오 부문)는 그동안 ‘떨어져도 다시 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올해가 유난히 힘겨웠다고 했다. 어머니가 무릎수술을 받으면서 자식으로 부끄럽고 죄송했다. 당선 소식에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그는 ‘힘을 내보자’ 다짐했다.

이수경 씨 역시 더 지나면 정말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습작기에 나이가 들어서다. 그는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비트 세대의 대표작가 잭 케루악도 글쓰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서은주 씨(42·영화평론 부문)는 응모 마감이 다가올 때면 늘 천사와 악마가 싸웠다고 했다. 포기할까, 말까 하는 싸움 끝엔 ‘적어도 한 번 써서 내면 내가 그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테니까’ 하는 생각에 응모를 해왔던 게 결실을 맺었다. 성현정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말을 인용했다. “매일 글을 써라. 강렬하게 독서해라.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이 단순한 말을 믿은 그에게 ‘일’이 난 셈이다.

하이브리드 시대에 걸맞게 분야를 넘나든 당선자들이 눈에 띈다. 시단에서 뛰어난 재기의 시인으로 일찍이 자리매김한 김경주 씨(40·희곡 부문)는 오랫동안 희곡을 써온 문인이기도 하다. 연극에 대한 뜨거운 열정, 극작가로 공식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 “독도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시와 극이 내겐 그런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시와 연극 모두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존재 자체라는 얘기다. 시집을 낸 시인인 문신 씨는 지난해에는 동시로 등단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사랑해온 시들에 대한 평론을 쓰겠다는 그는 “가치의 무게를 재는 저울 같은 글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다리품을 쉴 수 있는 느티나무 그늘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정지윤 씨(52·시조 부문)는 지난해 시로 등단한 데 이어 올해 시조가 당선됐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시조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마음을 다졌다.

신예 작가들에겐 새해 첫날 자신의 작품을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작품은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를 통해, 팍팍한 현실에 절망하는 어른들에게도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다.”(김희정) “시의 뜻을 뜯어보기보단 시의 호흡을 편안히 느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조상호) “평론이란 장르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독자들이 읽고 싶은 글의 접점을 마련하고 싶다.”(서은주) “모두가 힘든 시기에 같이 아파해 주며 희망을 노래하기를 소망한다.”(정지윤)

김봉곤 씨는 유난히 충격이 컸던 지난해 한국 문단을 돌아보면서 “작년 한국 문학이 암중모색 중이었다면 올해는 새롭게 시작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문학이 변하는 각도를 1도쯤 틀어놓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작가로 출발하는 당선자 9명에게 2016년은 한국 문학이 변화하는 각도를 틀어놓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믿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신춘문예#당선#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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