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은 혹독했던 과정보다 뜻깊은 순간을 떠올리고 싶다. 근래에는 ‘더, 더,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이, 또 ‘힘을 들여야 한다’는 말씀이 들려오곤 했다. 고백하자면 절벽에 서 있을 때 들려온 귀한 ‘말씀들’이었다.
한 선생님은 인상적인 하나의 시적 표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하지만 내 둔탁한 감수성으로는 언어의 질감을 매만지며 이미지의 흐름을 좇는 것만도 벅찼다. 한 선생님은 또 버리는 쾌감을 맛보라고 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우연의 빛나는 표현과 잠시 조우할 때도 있었다. 교착상태에서 탁한 감정과 부박한 언어를 경계하며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을, 화자 중심의 시선으로 쉽게 결론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새해가 되면 나의 아름다운 고창에 가야겠다. 오래 비워둔 집에 보일러를 돌리고 아버지가 머물러 계신 산소에도 들러야지, 그리고 어머니가 보고 싶다.
오랜 시간 섬세한 눈길로 미욱한 제자를 깨우치고 기다리고 또 지켜주었던 오형엽 교수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한결같은 마음이 없었다면 시가 시작되는 이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것만 같습니다.
어머님 같았던 김미란 오태환 강웅식 선생님. 귀한 선생님들과의 만남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밥과 술과 안식처로 내 가난한 영혼을 항상 그 자리에 서서 지켜준 올곧은 동혁. 우리 시천(詩川) 동인인 진실한 승진 형, 명민한 형철, 용국 형, 원경, 모던한 의리남 원준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진섭 형 차례입니다. 민영, 종만 선배님. 초등 친구 성규. 연구실의 아름다운 청년 영찬, 시로 도발할 때 가장 아름다운 보영 병주 혜미 지민 은진 누님 고맙습니다. 이제는 오래된 기와집처럼 진한 할머니 냄새 물씬한 내 어머니, 가족들….
읽을 때마다 눈이 부신 황현산 김혜순 선생님.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정진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동아일보사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1976년 전북 고창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 재학 ▼빠른 질주-멈춤의 리듬감… 언어적 상상력이 돋보여▼
[심사평]시
본심에서 6명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펜트하우스’ 외 4편의 시는 비유를 적절히 운용해서 한 편의 시를 끌고 간다. ‘엄마가 방안에 앉아 재봉틀로 짝퉁 루이비통에 유성들을 박아넣는 경험’에서 시가 발아한다. 그 자리에서 재봉틀은 유성이 되고, 방은 펜트하우스가 되고, 인공위성을 미행하며, 재봉틀의 잔소리가 음속을 돌파한다. 비유된 세계와 실제 세계가 일대일로 대응하고 있다. 다른 시에서도 자신의 입으로 불어야만 하는 ‘진술’ 행위와 유리알 전구 만들기 같은 두 가지 행위가 ‘불다’라는 동사의 주어로서 같은 의미를 내포해 배열되고 있다. 그러나 시 한 편에 다 포함될 수 없는 문장들이 돌출하고, 비유에 치중하느라 현실감을 놓쳐 버리는 부분이 지적됐다.
‘훈풍’ 외 4편의 시는 시편마다에 들어 있는 간곡한 말, 경험을 고백할 때 언뜻 보이는 아픈 정경들의 표현이 좋았다. 자신의 기억을 말에 걸칠 때 그 말의 결을 스스로 발명해 내는 것이 시의 새로움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특한 손놀림’, ‘팔딱이는 주먹 심장’처럼 두 개의 단어나 세 개의 단어로 경험을 응축해 버린 어구가 많고, 이 부분들이 오히려 시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입과 뿌리에 관한 식물학’ 외 4편은 상상력으로 시를 끌고 간다. 은유된 언어의 머뭇거림과 확장, 빠른 질주와 멈춤이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시는 마치 ‘점령할 수 없는 나라의 국경처럼’ 언어로 만든 점과 선, 리듬으로 시에 여러 개의 경계를 설정한다. 동시에 언어적 상상으로 세상을 더듬어 나가고, 더불어 떠나고, 정신의 세계를 어루만진다.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음운과 음운들이 서로 조응하면서 달려간다. 시의 ‘입술을 달싹’여 저 ‘마젤란 펭귄’이 사는 곳까지 뿌리를 내리며 가는 것이 아마도 이 시인의 ‘식물학’이리라. 논의 끝에 응모작 5편 모두 고른 시적 개성과 성취를 가진 점을 높이 사서 ‘입과 뿌리에 관한 식물학’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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