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6]작은 봉우리 올라… 이젠 ‘좋은 글’이란 산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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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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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시나리오

김희정 씨
김희정 씨
영화는 스트레스 상황에 처한 인간의 영혼을 그립니다.

당선 소식을 듣던 날 집 근처 영화관에서 설산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해 가는 산악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감정이입은 확실했습니다. 대가 없이 히말라야를 오르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몇 년째 대가 없는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이었으니까요.

영화관을 나서며, ‘동아일보입니다. 전화 부탁합니다’라는 문자가 도착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당선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산의 정상에 서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르며, 긴 기다림 끝에 나도 신춘문예에 받아들여졌구나 싶었습니다. 매년 신춘문예에 도전하며 좌절하고, 무너지고, 또다시 마음을 추슬러 도전하고…. 높게만 보이던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고지에 올라섰다는 생각에, 해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습니다. 해마다 연말 연초가 우울했는데 새해는 우울하지 않게, 기쁘게 맞게 됐습니다. 이제 아주 작은 산봉우리에 올랐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신중하게 내디디며 더 크고 높은 산봉우리들을 오를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불안한 저를 묵묵히 지켜봐준 가족들에게 아주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글을 쓰며 만났던 많은 문우와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고집불통인 저를 챙겨주고 인정해준 친구들에게도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에도 장점을 봐주신 두 분 심사위원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세상 모든 영화의 주인공들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갈등을 견디어내고 목적을 이루기 때문에 주인공입니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목적을 세워, 그 목표를 성취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반드시.

△1972년 서울 출생 △목원대 국문과 졸업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감동-재미 잘 버무려… 코끝 시큰한 가족영화▼

[심사평]시나리오

지난해에 비해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고 꽤 괜찮은 시나리오들이 본심에 올랐다. 12편의 본심 진출작 중 심사위원들은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안 돼 쉽게 의견을 모았다.

‘아비규환’은 다른 응모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른’이 쓴 것 같다. 영상을 생각하며 찬찬히 쓴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죽어도 가족’은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사흘간의 소동극이다. 기획력이 돋보였지만 잘 가다가 세 번째 날부터 식상함으로 마무리되어 아쉬웠다. ‘태양의 피’는 서스펜스 설정이 좋았으나 막판에 힘이 빠지고 좀 더 정교한 플롯이 필요하다. ‘양색인’은 흥미를 유발하는 상업적 소재로 쉽고 대중적인 이야기로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많다. ‘춘앵전’은 조선 역사에서 길어 올린 신선하고 독창적인 소재의 발굴이 의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자가 왜 춤에 열중하게 되었는지 계기가 약하다.

당선작인 ‘정복의 영웅’의 ‘정복’은 일곱 살 주인공 이름이다. 소재와 이야기는 TV 단막극에 어울릴 법한 작은 규모지만 감동도 있고 코끝이 시큰한 가족영화로 손색없게 잘 직조했다. 뭉클하고 소박하고 잔잔한 감동과 재미까지 있어 꼭 영화로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진정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는 것은 당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떨어졌다고 어렵게 선택한 소재와 이야기를 그냥 노트북 파일 속에 묻어 두지 말고 수정과 퇴고를 거듭하며 완성해 보기를 바란다. ‘만다라’ ‘짝코’의 송길한 선생님께서는 ‘시나리오는 발로 쓰는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시나리오를 쓰는 데 지름길은 없다. 자꾸 쓰고, 고치고, 퇴짜 맞고 하면서 시나리오는 좋아지는 것이고, 어느새 영화로 제작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정향 영화감독·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동아일보 신춘문예#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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