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쩡, 쩡, 쩡, 돌을 튕기며, 쩡, 지가 무슨 바닥이나 된다는 듯이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언젠가는 녹아 흐를 것들이, 쩡, 봄이 오면 녹아 흐를 것들이, 쩡, 쩡 아예 되기도 전에 다 녹아 흘러 버릴 것들이 쩡, 쩡, 쩡, 쩡, 쩡,
겨울 강가에 나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얼어붙은 눈물을 핥으며 수도 없이 돌들을 던져 본다 이 추운 계절 다 지나서야 비로소 제 바닥에 닿을 돌들을. 쩡 쩡 쩡 쩡 쩡 쩡 쩡
겨울과 밤을 시련으로, 새벽이나 태양, 봄 따위를 희망으로 계열화하는 것은 시의 오래된 관례다. 자연의 상태를 빌려 인간 삶의 형편을 드러내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변만화를 품고도 궁극의 질서를 잃지 않는 자연의 운행에서 현실에 깃들여야 할 순리를 찾는 일. 내일도 해는 뜰 것인가, 겨울은 끝나고 봄은 과연 또 올 것인가 하는 두려움과 기다림은, 태곳적부터 인류의 유전자에 찍힌 생존 열망의 핵심이다.
화자는 언 강에 나가 봄을 기다리며 돌을 던진다. 시가 발표된 1980년대를 생각해보면, 이 팔매질은 개인적 울분이기도 하고 현실의 억누름에 대한 대듦인 듯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 생경한 부르짖음은 없다. 슬픔과 희망은 ‘봄이 오면 녹아 흐를 것들’ 같은 문장들에 갈무리되어 있다. 얼음장은 바닥이 아니므로 언젠가는 물로 녹아 흐를 것이다. 인간사의 혹한도 물러가고 기운 생동하는 계절이 올 것이다. 하지만, 대체 언제? 그걸 모르지만, 답답하고 괴롭지만, 봄을 바라는 자가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추위와 울분으로 눈물을 뿌리며 돌이라도 던져보는 것.
의미심장한 것은 “쩡”이라는 의성어다. 얼음이 돌을 튕기는 이 소리에 벌써 어떤 균열의 조짐이 묻어난다면 과장일까. 이것은 얼음의 소리지만 동시에 얼음이 깨지는 소리다. 무엇보다도 얼음에 돌이 날아가 부딪쳐 나는 소리다. 시대의 어둠이란 것도 최고조에 달했을 땐 홀연 빛의 금이 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려면, 오는 자연의 신호에 호응하여 이쪽에서도 무슨 신호 같은 걸 보내기는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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