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상무의 야구만화 ‘독고탁’은 허영만의 ‘각시탈’과 함께 초등학교 시절 내 또래를 사로잡았던 만화다. 교과서 외의 책은 별로 읽어 본 적이 없는 우리가 뜻밖에도 출판물에서 발견한 재밋거리였다. 만홧가게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많은 만화를 봤지만 두 만화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더 좋아했던 쪽을 들자면 독고탁이다. 각시탈에서는 좋은 각시탈과 나쁜 일본 경찰이라는 대립이 자꾸 보다 보면 지루하게 느껴지는 데 비해 독고탁에서는 반항적이지만 다감한 독고탁과 성실하지만 냉정한 독고준의 갈등이 보다 다층적인 울림을 갖는다.
▷우리 만화사에도 간혹 불쑥 솟아오른 황금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독고탁과 각시탈 이후 그렇게 큰 관심을 끄는 만화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학생 시절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박봉성의 ‘신의 아들’이 나왔을 때 다시 한번 만화에 빠져들었다. 특히 공포의 외인구단은 처음 몇 권인가를 빌려 보다가 끝까지 보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어 밤늦게 셔터를 내린 만홧가게 문을 두드려 나머지를 모두 빌려 본 기억이 난다.
▷만화는 제9의 예술로도 불린다. 각 세대에는 그 세대마다의 만화가 있다. 요즘은 웹툰이 만화를 대신한다. 윤태호의 ‘미생’이나 최규석의 ‘송곳’ 같은 인기 웹툰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독고탁과 각시탈 이전에는 김용환의 ‘코주부’나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같은 네 컷짜리 신문 만화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여성들에게는 순정만화 ‘캔디’ ‘베르사이유의 장미’ ‘북해의 별’ 등에 대해 저마다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독고탁은 내 또래에게 단순한 만화 이상이었다. 영국 소년은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 프랑스 소년은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 미국 소년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 나가는 의지를 배웠다. 우리에게는 그에 필적하는 소년 소설이 없었다. 독고탁의 분투가 그 공백을 일부 채웠다. 그제 작업실에서 작품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 작가에게 늦었지만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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