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마다 쳇바퀴처럼 도는 육십갑자(六十甲子)에 색깔이 더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쥐, 소, 호랑이 등 열두 개의 띠 앞에 최근 들어 다양한 색상이 붙고 있다. 올해 병신년(丙申年)은 ‘붉은 원숭이의 해’, 지난 을미년(乙未年)은 ‘푸른 양의 해’다.
궁금증이 생겨 1920년 동아일보 창간호부터 뒤져 봤다. 1950년대에 띠 이름에 색상을 더한 기사가 처음 등장했다. 1959년 1월 1일 동아일보 2면에는 “금년은 기해년(己亥年)이다. 돼지 중에서도 누런 돼지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띠 동물에 색깔을 더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육십갑자는 갑(甲)으로 시작해 계(癸)로 끝나는 10개의 천간(天干), 쥐로 시작해 돼지로 끝나는 12개의 지지(地支)를 한 글자씩 붙여 만든다. 천간을 이루는 10개 글자는 음양오행에 따라 의미하는 색상이 다르다. 순서대로 갑 을은 파란색, 병 정은 붉은색, 무 기는 노란색, 경 신은 흰색, 임 계는 검은색을 뜻한다.
올해는 병신년의 병(丙)이 붉은색과 태양, 남쪽 등을 뜻해 붉은 원숭이해가 됐다. 주역 전문가인 임채우 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는 “띠에 색상을 더하는 것은 음양오행 중에서도 민간 습속(習俗)에 해당하는 미신”이라며 “중국에서 이런 미신이 성행하면서 한국인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술적 해석을 떠나 국민들에게 띠의 색상이 각인된 것은 2007년 ‘황금 돼지해’부터다. 세간에 “황금 돼지해에 태어나는 아기는 재운(財運)을 타고난다”는 속설이 돌면서 2006년 겨울부터 황금돼지 열풍이 불었다. 출산에 대비해 금연에 나선 남성의 이야기가 신문 지면에 오르는가 하면, 유통업체들은 경쟁적으로 황금 돼지 이벤트를 벌였다. 2007년 한 해에만 전년보다 5만 명 늘어난 49만3000명의 아이가 태어나 유아용품 시장이 중흥기를 맞았다.
하지만 2007년 정해년(丁亥年)을 천간의 색으로 보면 붉은색으로 황금과는 관련이 없었다. “음양오행 이론을 더 깊이 적용하면 600년 만에 돌아온 황금 돼지해가 맞다”는 일각의 주장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 이후 색상 동물 마케팅은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했다. 흑룡의 해인 2012년이 그랬다. 그해에도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다’는 속설에 전국 방방곡곡에 아기 울음소리가 퍼졌다. 다만 ‘돈을 잘 번다’는 황금 돼지의 속설만큼 매력적이진 않았는지 출생아 수는 48만 명대에 그쳤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병신년의 붉은 원숭이를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이 등장했다. 붉은 원숭이 모양의 목걸이와 컵, 화장품, 속옷까지 나왔다. 한국증권거래소는 붉은 넥타이를 매고 새해 첫 장을 열었다.
얄팍한 상술이라 비판할 수 있지만 마냥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도 없다. 2012년 흑룡의 해에 통계당국의 한 관계자는 “흰 용이든 검은 용이든 출산에 도움만 된다면 나라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내수시장에 한 줌의 활력이라도 줄 수 있다면, 붉은 원숭이든 푸른 원숭이든 힘내라고 응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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