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송년의 밤부터 나는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올해 맞는 첫 주말엔 운동을 해보려 했는데 계획이 두 번이나 취소돼 결국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새해 파티 때 즐겁게 들었던 노래들부터 다시 들었더니 무척이나 흥분됐다. 한 곡 더 듣고, 또 한 곡 더 고르고, 더 좋은 곡이 생각나 바로 다음 곡을 틀고…. 끊임없이 예전 노래와 최근 노래를 들으며 오후 내내 혼자 디제이 놀이를 신나게 했다. 오랜만에 ‘몰아 듣기’를 하니 참 상쾌했다. ‘새해 복(福)’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새해 곡’은 이미 많이 받은 것 같다.
음악평론가는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벨기에 가수가 한 명 있다. 이름이 다소 낯설 순 있겠지만 한국인들도 부담 없이 감상할 만한 곡을 부르는 사람일 것 같아 공유해 본다(이것은 건설적인 문화 교류!). 바로 스트로마이(1985년생)라는 젊은 싱어송라이터다. 위키피디아 한국어 페이지에서는 “스트로마이는 벨기에의 가수, 래퍼, 작곡가이다” 정도밖에 안 나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세계적으로는 꽤 인기가 있는 가수다. 싸이의 유튜브 기록은 아예 다른 차원이라 인지도에서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스트로마이의 뮤직비디오들도 유튜브 시청 횟수가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몇백만이나 몇천만 번씩, 그리고 서너 곡은 몇억 번씩 될 정도로 상당히 주목받고 있다. 벨기에 가수치고는 완전한 신기록이다.
동영상 조회 수치보다 눈길이 쏠리는 것은 그의 노래들과 비디오 클립들의 품질과 독창성이다. 한국의 케이팝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한 면이 있다. 소재가 비슷하고 뻔한 내용일 때가 많다. 반면 스트로마이는 대중성도 있으면서 깊이가 있다.
우선 음악적인 면으로 보면 그의 곡은 하우스뮤직, 샹송, 힙합, 오페라, 아프리카 음악과 남미 음악 등 아주 다양한 장르 요소를 영리하게 빌려 만든 특별한 팝송들이다. 스트로마이란 이름은 ‘마에스트로’의 음절을 뒤집어 표기한 가명이다. 그의 가사도 괜찮다. 사실 프랑스말은 팝 음악과 잘 어울리지 않거나 어색한 경우가 많은데, 그의 프랑스어 노래는 독특하면서도 조화로운 편이다. 이는 분명한 장점이다. 그는 때로는 벨기에 국민 가수 자크 브렐(1929∼1978)과 비슷한 스타일로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들이 다루는 주제들도 보통이 아니다. 아버지의 부재, 암, 소셜미디어 중독의 위험성, 학대, 남성 우월주의와 성차별, 에이즈, 동성애 혐오, 신앙 같은 소재에 대해 부르는 것을 보면, 그는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들을 무서워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주제들을 다룰 때마저 매력적인, 그리고 댄스에 적합한 노래를 작곡할 수 있다는 점은 참 신기한 것 같다. 남녀 관계 같은 흔한 테마에 대해 쓸 때도 상투적인 문구를 피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작품성이 높은 비디오 클립도 그가 부르는 노래의 또 하나의 강점이다. 그는 이 세상에 가수로서 주목받으려면 인상 깊은 비디오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비디오를 제작할 때도 특별히 신경 쓰며 그의 기발한 시각을 반영한다. 뮤직비디오들은 각각의 곡 주제에 따라 그 고유한 콘셉트가 있다. 소셜미디어에 관한 곡 ‘카르멘’ 비디오는 프랑스 만화영화 거장 실뱅 쇼메가 제작한, 트위터를 상징하는 파랑새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단편이다. 아프리카 카보베르데의 국민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1941∼2011)에 대한 오마주 곡 ‘아베 세자리아(Ave Cesaria)’는 한 가족이 연 파티를 옛날 캠코더로 찍은 듯한 아마추어 비디오 스타일의 클립이다. 마초주의를 비판하는 ‘남자가 다 그렇지 뭐(Tous les m^emes)’ 뮤직비디오에는 스트로마이가 남자와 여자로 동시에 등장한다. ‘언제야(Quand c’est)?’라는 뮤직비디오는 암의 위험성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아빠 어디야(Papaoutai)’란 노래의 비디오 클립도 무용, 연기, 촬영, 편집 등 다양한 방면으로 제작 수준이 참 뛰어나다.
스트로마이는 가수이자 프로듀서, 댄서, 배우, 또 어떻게 보면 사회학자이기도 한 재능이 넘치는 ‘종합 아티스트’인 것 같다. 그런 인물이 21세기 초 다문화사회의 유럽을 어느 정도 대표해 줬으면 좋겠다. 여러모로 끔찍한 한 해였던 지난해보다 새해에는 아량 있고, 또 좀 더 똑똑하게 춤을 추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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