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살다]실리콘밸리와 한옥, 그 닮은꼴 공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7일 03시 00분


림펜스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림펜스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 장명희 한옥문화원장이 ‘한옥에 살다’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옥에 살다’는 현대인들의 주거 공간 속에서 한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한옥의 미래 가치를 재발견하는 코너입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주거환경학 박사학위를 받은 장 원장은 1999년 한옥문화원 설립을 주도해 현재 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인 야후가 최근 재택근무를 금지했다고 한다. 재택근무는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그래서 업무효율을 높이는 근무 형태라고 인식되어 널리 퍼졌는데 왜 그런 변화가 생긴 걸까. 이유는 경영진이 사람 간의 직접적인 만남과 소통에 가치를 두기 시작한 데 있다. 서로 다른 전문 분야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도출되며 그것이 매우 창의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되더라는 것이다.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 세계 IT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업무공간 디자인을 바꾸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기업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만남을 유도하도록 개방된 공간(open space)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오픈 스페이스의 위치에 따라 늘 만나던 사람끼리만 모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취향의 사람들끼리 유기적으로 모이도록 자연스레 유도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취향의 사람들끼리 모여 분야 간 지식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산출되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최근 일고 있는 실리콘밸리 공간 디자인 트렌드의 핵심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공간. 우리 전통 한옥에는 그러한 공간으로 ‘마당’이 있다. 안채와 사랑채, 뜰아래채는 각기 다른 지붕을 인 별도의 공간이며 기능도 다르다. 그러나 그것들은 안마당을 둘러싸고 빙 둘러 놓여 있으며 그 안마당으로 인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당과 방 사이 대청과 툇마루는 주인이 방에서 몸만 내민 채 이웃과 동네 소식을 나누고 찾아오는 사람과 막걸리 한잔할 수 있는, 방의 연장이요 외부와의 완충 역할을 수행하는 유연한 장치이다. 각 채와 방의 사람들은 대청과 툇마루를 통해 마당으로 이어지고, 문과 담의 배치에 따라 마당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층위와 만남의 범위가 조절된다. 이런 한옥의 마당은 실리콘밸리가 추구하는 오픈 스페이스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실리콘밸리가 공간 디자인에서 추구하는 트렌드는 또 있다. 바로 자연친화 환경 조성이다. 마감재로 원목을 사용하거나 칠, 조명 등에서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계절과 시간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보고 느끼도록 공간을 디자인하고 있다. 역시 목적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몸을 편하게 하는 자재로 꾸며진 공간, 햇빛과 눈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인체는 살아난다. 몸과 마음이 살아나니 두뇌 또한 생기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공간은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작은 칸막이 하나로도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동선이 바뀐다는 건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러니 기업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기 위해 업무공간 디자인에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탁월한 전략이다.

첨단 산업의 기지로서 개인의 역량 극대화와 효율성에 주력하는 기업문화를 선도한 실리콘밸리가 이처럼 만남과 자연 친화를 추구하며 직원들과 지역 공동체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만남과 자연 친화는 기실 우리 한옥이 이미 성취한 건축정신이다. 실리콘밸리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할 방법을 찾으며 도달한 지점이 이미 우리 한옥문화가 가지고 있는 정신과 일치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이 살면서 부닥치는 문제들은 새롭지 않다. 인간의 역사가 바로 문제와 그 해결의 기록 아니던가. 한옥에는 이 땅에서 집을 지으며 또 그 집에서 살며 부닥친 문제들을 해결해 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대의 우리가 필요할 때 꺼내 볼 보물상자다.

실리콘밸리의 공간 트렌드는 세계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이를 도입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트렌드를 배우고자 먼 나라를 기웃거릴 것인가? 우리에게는 한옥이 있다. 5000년간 축적된 지혜의 빅데이터 말이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야후#재택근무#실리콘밸리#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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