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카페]광장 민주주의 여는 일본 학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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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겐이치로-‘실즈’ 대담집 ‘민주주의란 뭔가’

지난해 여름 일본 도쿄(東京) 국회 앞에서는 일본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광경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안보법제 강행처리 방침에 반발해 도로를 점거하고 밤낮으로 시위를 벌인 것. 일본인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정치에 가장 무관심한 것으로 여겨졌던 대학생들이 시위의 중심부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지난해 9월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 책 ‘민주주의란 뭔가’는 시위를 주도한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 멤버들이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郞) 메이지가쿠인대 교수와 나눈 대화를 담았다. 책의 매력은 실즈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데모를 조직했는지를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책에 따르면 일본 대학생들이 달라진 계기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정부, 대기업, 언론 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이들이 생겨난 것. 2012년 여름 벌어진 원전 반대 시위는 이들에게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실즈의 리더 격인 오쿠다 아키(奧田愛基) 씨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어떤 것인지 보러 갔다”고 돌이켰다. 이 자리에서 뜻이 맞는 동년배들을 만나며 실즈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들은 2013년 말 아베 정권이 특정비밀보호법을 통과시킬 때 다시 뭉쳐 실즈의 전신인 SASPL(특정비밀보호법에 반대하는 학생모임)을 만들었다. 실즈의 트레이드마크인 힙합 스타일의 구호가 이때 만들어졌다. 오쿠다 씨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리듬감 있는 연설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힙합 스타일을 도입한 건 간접화법과 경어가 많아 강한 주장에 어울리지 않는 일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5월 드디어 아베 정권의 안보법제 강행처리를 막기 위해 실즈가 탄생했다. 실즈는 매주 금요일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기존 스타일과는 달랐다.

추상적인 구호를 외치는 대신 한 명씩 올라가 자신의 얘기를 했다. 오쿠다 씨는 “실즈의 의견은 없고, 개인의 의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 사람씩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했다. 회장 같은 거창한 감투를 없애고 소모임을 만들었고 소모임 리더끼리 수평적으로 소통했다.

실즈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면서 고등학생, 학자, 노인, 주부, 지방 모임 등 유사조직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했고 지난해 여름 국회 앞에 수십만 명이 모일 수 있었다.

실즈의 가장 유명한 구호는 누가 “민주주의란 뭔가”라고 물으면 참석자들이 “이거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독선과 권력욕으로 얼룩진 국회가 아니라 민주적 방식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즐기는 이곳에 일본의 민주주의가 있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이들의 시위는 축제를 방불케 한다.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비민주적으로 작동하는 한국 정치권과 각종 단체, 그리고 문화제로 시작해 폭력 시위로 마무리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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