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에 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영어로 소포모어(Sophomore)니 지혜(sophia)와 바보(moron)가 합쳐진 시기였죠. 실제 바보짓도 많이 했지만 그 해 잘한 일 중 하나는 ‘살아있는 플루트의 제왕’으로 불리는 아일랜드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의 콘서트를 보러 갔던 일입니다.
당시 45세, 골웨이의 플루트 소리는 살집이 도톰하게 잡힌 탐스러운 소리였고, 그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완벽한 기교를 뽐냈습니다. 제 자리는 세종문화회관 3층의 거의 꼭대기였고 연주자의 얼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상관 없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갈채 속에 골웨이가 무대에 다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플루트를 들지 않은 빈손이었죠. 관객들이 박수를 그치지 않자 그가 갑자기 연주복 안주머니에서 뭔가 꺼냈습니다. 리코더를 닮은 아일랜드 악기 ‘틴 휘슬’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한층 열렬한 박수를 쏟아냈습니다. 그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골웨이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활기찬 지그(Jig) 춤곡이 흘러나왔습니다. 경쾌하게 연주를 이어나가던 그가 연주복에서 틴 휘슬 하나를 더 꺼냈습니다. 입에 악기 두 개를 물고 양 손으로 두 악기를 연주하며 화음을 맞추었습니다. 객석에서 ‘우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제 일 같은데 벌써 30년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18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이제 76세가 된 골웨이가 부인이자 플루티스트인 지니 골웨이, 그리고 서울 바로크합주단과 함께 연주회를 갖습니다. 치마로사, 고세크, 로타 등의 작품을 연주하는 이날 프로그램 중에서 영화 음악가 헨리 맨시니의 ‘페니휘슬 지그’가 유독 눈길을 끕니다. 31년 전 골웨이가 앙코르로 연주한 것과 같은 곡입니다. 맨시니의 곡으로 표시돼 있지만 실제는 아일랜드 전통 선율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번 무대에서 골웨이는 예전처럼 ‘피리 두개 신공’을 보여줄까요? 예전과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옛 추억에 젖을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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