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십국 시대, 낙양에 여러 번 도적 떼가 쳐들어와서 백성이 백 호도 채 남지 않았다. 하남윤(河南尹)으로 부임한 장전의(張全義)는 재능 있는 부하 18명을 선발해 각자에게 깃발 하나와 방문(榜文) 하나씩을 주었다. 장전의는 그들을 둔장(屯將)이라고 불렀다.
장전의는 둔장을 18개 현이 있던 옛 마을에 보내 깃발을 세우고 방문을 붙여 유민을 불러 모으게 했다. 조세를 감면할 테니 돌아와 농사를 지으라고 권했고, 법을 위반한 자들 가운데 살인범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장형으로만 다스리도록 했다. 그때부터 백성이 속속 돌아오기 시작했고 몇 년 뒤에는 옛 모습을 회복했다.
장전의는 잘 가꾸어진 비옥한 밭을 볼 때면 말에서 내려 부하들과 함께 그 밭을 한참 구경했고 밭주인을 불러 술과 음식으로 위로했다. 뽕이나 보리가 잘 자란 밭을 보면 친히 그 집에 찾아가 노인과 아이들을 모두 불러다가 차나 의복을 상으로 내려주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장전의는 풍악이나 여색 앞에서는 웃지 않다가 잘 가꾸어진 보리밭이나 누에를 보고서야 웃는다네!”라는 말이 나돌았다. 백성은 다투어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 시작했고 살림도 점점 넉넉해졌다.
◆평어(評語)◆
장전의는 도적 출신이지만 뛰어난 관리보다도 정사를 잘 돌봤다. 관리로 있으면서 도적질을 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가? 장전의는 웃음 한 번으로 백성을 북돋을 수 있었는데, 지금 관리들은 백 번 화를 내도 백성에게 권위가 서지 않으니 그 까닭은 무엇일까? 풍몽룡 지음|문이원 옮김|정재서 감수|동아일보사 ※ 인문플러스 동양고전100선 네이버카페(http://cafe.naver.com/bookla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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